▲ 체육대회 당일 줄다리기 시합을 하고 있는 80년대 학번 학생들. 그들의 파릇파릇했던 순간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중대신문 사진자료

  ‘풋풋하다’란 단어보다 ‘능청스럽다’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그들. 이미 13학번 새내기들에겐 살아있는 역사 속 인물이 되어버렸다. 후배들 앞에서 지갑을 열 수밖에 없던 사연부터 과거 중앙대의 역사까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고학번’들의 농도 짙은 이야기를 한번 들여다보자.


  -누구에게나 학교생활은 조금씩 남다르다. 특히 고학번으로 산다는 것 자체는 무얼 의미하나.
예진 모든 게 참 부담스러운 자리다. 팀플하면서도 눈치가 보이고 밥을 먹으면서도 눈치가 보이는 그런 안쓰러운 위치.
인재 고학번이라면 지갑을 열 줄 알아야 한다. 생활신조가 있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라’다. 그 순간 후배들과 고학번의 간격이 조금씩 좁혀지기 시작한다. 쿨하게 부담감을 줄이자는 거다. 단, 물질적이라고 단정 짓지 말자.
상용 앞에 분들과 달리 후배들과 부담 없이 지내는 성격이라 어려움은 없다. 처음부터 선배라는 틀에 갇히지 말자. 막역하게 지내라.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라’란 신조가 독특하다. 왜 다들 선배라면 배고픈 후배에게 걸어 다니는 ATM기가 되어주고픈 순간이 있을 거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풍족하지 못한 대학생에게 금전적인 부담감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인재
맞다. 일정한 수입이 없을 땐 부담감이 크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 눈치가 필요하듯 후배들에게 지갑을 열 때도 노련함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의 필수 아이템인 눈치가 큰 몫을 하더라. 일단 모임 1차에서는 인원이 많아 더치페이한다. 그다음 술을 먹을 후배만 추려 확실히 쏜다.


  -다른 분들도 인재씨와 같은 경우인가. 적정선 없이 후배들에게 지갑을 열다 보면 큰 출혈이 생길 것 같다.

상용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내가 수학과여서 그런 건 아니지만 모든 건 정확히 자로 재듯 확실히 한다. 예를 들어 학년별로 차이를 두고 돈을 걷는 형식 말이다.


  -원론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다들 03학번, 05학번, 06학번인데 왜 학교에 남아 있는 건가.
예진
솔직히 털어놓고 이야기해보자면 학교생활을 제대로 못 했다. 후배들보다는 선배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러다 선배들이 모두 취직을 했고 나 또한 장기휴학을 결정하게 됐다. 학교에 다시 돌아와 보니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웃음) 여기서 웃긴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4년 만에 학교로 돌아왔을 당시 안면이 있던 교직원분이 대학원 석사 진학했느냐고 묻더라. 꽤나 진땀 흘린 날이었다.
상용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학점도 챙겨야 하고, 취직 준비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10차 학기 5학년이다.
인재 당당하게 말하려 한다. 학점은 다 이수해 수료상태이지만 졸업은 아니다. 왜냐? 영어점수가 없다. 10년 전에 영어공부를 멈춰 지금 ‘Graduate’ 철자도 가물가물하다.(좌중 폭소)


  -인재씨는 영어가 절실하지 않나.
인재 영어 공부도 취향인 것 같다. 일단 영어랑 적성이 안 맞는다. 솔직히 나이 들면서 능글맞아졌다. ‘문법’ 이런 건 모르겠는데 ‘회화실력’은 외국인과 자연스레 의사소통이 된다. 평소에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말문이 막히면 아이패드를 꺼내든다. 그리고 바로 구글 번역기를 사용한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웃음)
 

  -화제를 돌려 이야기해보자. 다들 장기휴학을 해본 경험이 있나. 
예진 오래 했다. 4년 정도. 휴학하면서 사회생활도 겪을 만큼 다 겪어봤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워킹비자로 호주에 가서 각종 농장일도 해보고……. 20대에 돈 주고도 못 사는 경험들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그런 값진 경험들을 얻다보니 자연스레 졸업도 늦어졌다. 휴학하면서 느낀 거지만 돈맛이 참 짜릿했다.
인재 2년 동안 휴학하면서 돈만 벌었다. 그래서 예진씨가 말하는 돈맛이란 걸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장기휴학을 하고 복학했을 때 어색했을 것 같다.
상용 휴학을 1년 정도밖에 안 했기 때문에 특별히 어색하지 않았다.
인재 없다. 휴학을 했어도 늘 저녁이 되면 학교 앞에서 알코올을 섭취하고 있었다. 언제나 항상 나는 중앙대와 함께 했다.
예진 늘 그래 왔듯 새내기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어색하다.


  -그래도 강의실만큼은 분위기가 변했을 텐데.
인재 난 한결같았다. 강의실에 존재하지 않았다.(좌중 폭소)
 

  -선후배가 동시에 모이는 자리인 엠티를 빼놓지 않을 수 없다. 엠티 갔던 기억을 되살려, 고학번이라 눈치가 보였는지 궁금하다.
예진
1학년 1학기 때 딱 한번 가보고 안 갔다. 주량이 적어 늘 낙동강 오리알처럼 한쪽 테이블 귀퉁이에서 가련히 잠이 들었다.
인재 더러 후배들이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겠으나 선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후배들과 어울리고 싶다면 그냥 선을 긋지 마라. 그럼 편하다.
상용 터울 없이 후배들과 지내기 때문에 부담감은 없었다. 엠티도 아는 사람이 많을 경우 간다. 무작정 선배 노릇 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후배들과 함께하는 술 게임문화도 어색할 것 같다. 여러 사례를 보면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지목을 잘 하지 않더라. 일명 늙은이 취급? 게임에 걸리면 그냥 깍두기 취급하더라.
인재 03학번 새내기 엠티 땐 학과 분위기가 게임과는 담을 쌓았다. 알코올 섭취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요즘 후배들은 술 게임을 즐기더라. 덕분에 그날 술 게임을 죽어라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나의 적극성 때문에 오히려 후배들이 두려워했다고 들었다.


  -인재씨는 새내기 때 고학번을 무서워하지 않았나.
인재 포스부터 달랐다. 대학생활의 첫 엠티를 98,99학번 선배들과 함께했다. 하지만 이미 출발하기도 전에 선배들이 취해있었다. 한번 입으로 달리기 시작한 선배들은 달리는 차안에서도 쉬지 않고 알코올을 섭취했다. 멋있었다. 아니, 장엄한 관경이었다. 사실 내가 고학번이 되고 들은 이야기지만 당시 선배들이 손에 술병만 들고 있었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다 거짓이었고 모든 게 연기였더라. 후배들과 거리감 없이 놀고 싶어서.(웃음)


  -다른 분들에게도 고학번이 어떤 선배로 다가왔는지 궁금하다.
예진 1학년 때 친했던 선배들이 99학번이었다. 6,7살 차이가 났지만 항상 귀여워해줬다.
상용 고학번? 당연히 어렵다. 눈도 마주칠 수 없는 그 위대한 포스. 범접할 수 없는 그 포스에 눌려 윗학번인 05학번과 놀았다.

▲ 장소제공 UBS 방송국

  -그렇다면 현재 자신을 무서워하는 후배들이 있나.
상용 11학번까지는 쉽게 말도 놓는다. 가끔 12,13학번하고 말을 섞긴 하지만 잦은 왕래는 없다. 좁고 깊게 사귀는 스타일이라 무서워하는 후배도 없을 것 같다.
인재 현재 학과 야구소모임을 하는데 그 아이들이 나를 두려워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잘못된 건 바로바로 지적하는 성격이라 겁을 내는 듯하다. 그 중 한명이 12학번 C군이다. 야구시합을 할 때마다 지각해서 몇 번 혼을 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학과에선 수업시간 20분 전부터 대기한다고 들었다. 이젠 이런 아이들을 보면 화가 나기보다 귀엽다.
예진 내가 불편했으면 불편했지 후배들이 나를 불편해하진 않는다. 파릇파릇한 후배들 정말 무섭다. 예를 들어 팀플을 할 경우 내게 “선배님 다 알고 계시죠? 전 믿어요”라고 툭 내뱉는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이 아닌가 싶다. 나도 똑같이 배우는 학생일 뿐인데.


  -이 타임에 또 빠질 수 없는 게 사랑이야기 같다. 바로 고학번과 후배의 러브라인.
예진 일명 늑대 같은 고학번이라고 하지 않나. 개인적인 경험이 없어 말을 못 하겠지만 어렸을 땐 내 주변으로 고학번이 많이도 몰렸다.(좌중 야유)
인재 이 질문은 나와 거리가 먼 것 같다. 나는 03학년도 새내기 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CC를 이어오고 있다. 남자라면 한우물만 깊게 파야 되는 거 아닌가.


  -추억의 시간으로 돌아가 각자 학교 다닐 때 주변 풍경은 어땠는지 듣고 싶다.
인재 고향이 전라도인데 고등학교 내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것이 꿈이었다. 그 부푼 꿈을 갖고 중앙대에 입성한 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좋아서? 아니다. 친구들과 자주 찾던 전라도 어느 순댓국밥 뒷골목과 참 많이 닮아있어서다. 그제야 로망은 로망일 뿐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예진 부산에서 올라와 상도역에 도착한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분명 중앙대가 근처에 있다고 들었는데 내 눈엔 가정집만 무성했다. 한참을 헤매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택시를 타고 말았다. 그렇게 도착한 중앙대는 작고 높고 허했다.
상용 사실 학교 건물만 변화했지 흑석동 주변은 입학할 당시와 비교해서 별반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 당시 중대생들이 많이 찾는 맛집이 있었나.
상용
맛집이랄 것까지는 아니지만 저렴한 가격에 양이 많은 밥집을 선호했다. 안타깝게도 요즘 그런 곳이 드물다. 기본으로 한 끼에 5천 원 이상이다.
예진 마지막으로 언제 먹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단비분식이 맛있었다. 그리고 순댓국밥하면 순대나라였다.
인재 돼지껍데기가 대박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대청 골목에 있는 돼지껍데기가게였다. 껍데기 한 장당 2,500원에 팔아 중대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 시절 우리는 그것도 비싸다고 생각해 껍데기 한 장을 잘게 잘게 잘라먹으며 양배추로 굶주린 배를 채웠다. 껍데기가게 입구만 들어서도 소주 한 병을 마신 듯 한 느낌이 들었는데……. 없어져서 아쉽다. 다시 한 번 양껏 배불리 먹어보고 싶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들 추억에 잠긴 듯하다. 학교생활에 있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없나.
예진 청룡가요제 본선에 올랐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청중평가단 앞에서 그것도 중앙대 학우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려 하니 심장이 쫄깃쫄깃 해지는 기분이었다. 비록 입상은 하지 못했지만 소개팅도 들어오고 자신감도 상승했던 주옥같은 시간이었다.
인재 입학식 날이었다. 선배 손에 이끌려 올라간 할매동산. 그곳에서 하루 종일 막걸리를 걸쭉하게 들이켰다. 당시엔 구질구질한 역사학과의 전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전통이야말로 정답고 인간미 넘치지 않았나 싶다.(웃음)


  -그 외 학교 상징물들에 대한 추억은 없나.

인재 Y로와 얽힌 루머가 하나 생각난다. 언젠가 고학번 선배가 내게 “왜 Y로 끝자락에 상징탑이 우뚝 솟았는지 생각해봐라. 음기가 스산해서 상징탑을 세운 것이 분명하다”며 루머를 말하더라. 보너스 루머로는 청룡이가 품고 있는 지구본이 1년을 주기로 한 바퀴씩 돌아간다는 설이었다.(웃음)
상용 덧붙여 2018년에 청룡이가 하늘로 승천한다는 소문도 있다. 그리고 할매동산이 없어져 아쉬움이 남는다. Y로에서도 선배들과 술 많이 마셨는데…….
예진 할매동산, Y로, 상징탑도 기억에 남지만 뭐니 뭐니 해도 청룡탕이 아니겠는가. 선배들이 그곳에 발만 담가도 병균 옮는다고 겁을 많이 줬다. 요즘엔 청룡탕이 CC들의 로맨틱 데이트 장소더라. 눈꼴사납다!
  -정리해보면 고학번인 만큼 모두가 추억도, 경험도 풍족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속 시원히 물어보자. 다들 언제 졸업을 할 예정인가.
상용 현실적인 문제이지만 취직이 된다면 바로 졸업을 할 예정이다. 이제 졸업 학점은 채워둔 상태라 취업만 되면 만사오케이다!
인재 영어 단어를 다 외우게 된다면 하겠다.(좌중 폭소)
예진 올해는 기필코 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 20대인만큼 하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 아직 내겐 세상을 방랑할 권리가 남아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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