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손으로 나누는 대화
  • 한영진
  • 승인 2013.09.2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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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CA(재량활동)반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 ‘영화 감상반’에 들어가기 위해 손바닥에 기를 모았다. 그러나 최유일 학생(정치국제학과 3)에게 ‘가위바위보’ 운은 따라주질 않았다. 결국 그는 인기 없는 CA반을 찾아가야만 했고 그렇게 ‘바둑반’에 들어갔다. 그것이 바둑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 어쩔 수 없었던 순간이 지루했던 그의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상대와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순간을 그는 “경기 종료 직전 1:1상황의 축구를 보는 기분”이라고 표현한다. 그저 정적이고 따분할 것만 같았던 바둑은 생각보다 동적이고 흥미로운 게임이었다. 전략대로 바둑판을 이끌고 숨겨뒀던 필살기로 판을 뒤집을 때의 짜릿함은 지금까지도 그를 바둑판 앞에 앉아있게 만들었다.

CA반 활동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바둑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던 그는 ‘바둑학원’을 찾아갔다. 처음 방문한 바둑학원에는 미취학 아동들과 초등학생들로 가득했다. “누가 보면 이상했을 거예요.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16살 청소년이 같이 바둑을 두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몇 년을 다니다 보니 그를 대적할만한 상대가 없을 정도였다.

단순히 즐거워서 시작했던 바둑이었지만 그는 바둑학과로의 진학까지 결심하게 된다. 이곳 중앙대로 편입하기 전엔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학생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평생 바둑을 두며 살고 싶었어요.” 한때 바둑을 가르치는 교육자를 꿈꿨던 그는 바둑에 대한 교육열도 대단했다. 학교 수업시간, 책상에는 언제나 교과서 대신 바둑책이 펼쳐 있었다. “바둑 공부를 하겠다고 과제란 과제는 모두 뒷전이었죠. 때문에 선생님께 360대까지 맞아본 적도 있어요.(웃음)”

그러나 평생 바둑으로 먹고살고자 했던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그는 군 복무 중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정치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불합리한 사회구조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바둑은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잖아요. 취미생활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그는 중앙대 정치국제학과로 편입에 성공했다. 이제 바둑은 그의 취미가 되었지만 바둑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다리를 꼰 채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온라인 바둑 삼매경에 빠져있는 최유일 학생. 바둑을 두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요즘엔 온라인으로 바둑을 두고 있다. 가끔 장난도 치고 바둑돌을 물러달라며 밀고 당기는 재미가 있는 오프라인 바둑보다는 재미가 덜하지만 이렇게라도 틈틈이 바둑을 두는 것이 그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오프라인 바둑이 그리울 때면 바둑학과 동기들과 바둑을 두기 위해 명지대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비록 먼 길을 다녀와야 하지만 그에게는 즐겁기만 하다.

바둑의 별칭 중 하나인 수담(손으로 나누는 대화). 10년 동안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많은 상대와 수담을 나눴다. 비록 입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바둑 한판에 모르는 상대와도 쉽게 친해지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상대가 두는 바둑돌만을 보고도 대충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어요.” 바둑판을 통해 많은 사람을 알고 친분을 쌓게 되는 것이 그에게 큰 즐거움이다.

“각박한 마음은 촉박한 삶을 만든대요.” 대학생활에 바빠 바둑을 즐길 시간이 별로 없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다. 그가 대학생활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이유는 스펙 쌓기에 쫓기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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