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관을 지나가다 플래카드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총학생회가 내걸은 플래카드인데요. “잠깐! 독도침탈야욕의 일본제품 구매는 다시 생각해주세요”였어요. 문과대 해방광장 쪽에도 비슷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일본제품 구매를 다시 생각해달라는 내용이었어요. 이걸 무슨 의도로 내걸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플래카드 옆에는 안중근 의사의 사진이 붙어 있고 나름 진지한 궁서체로 쓴 것 같은데요.
 
  독도침탈야욕이랑 일본제품 구매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일본의 독도 영유권 문제 때문에 애국하자는 차원에서 일본 제품을 쓰지 말자는 것 같은데요. 이런 논리대로라면 독도침탈야욕을 가진 일본의 나랏말 일본어를 배우는 일문과는 괜찮은 건가요. 
많은 학우들이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이익을 위한 의견들을 모아주기를 기대하며 학생회비를 냈을 텐데요. 이런 설득력 없는 플래카드가 우리학교에 걸렸다는 자체로 얼굴이 화끈거려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요. 독일의 사회학자 맑스 베버는 “그 나라의 정치인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나타낸다”고 했지요. 따지고 보면 총학생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런 총학에 투표한 우리들 잘못이에요. 최소한의 상식은 검증하고 투표를 하셨어야죠. 학생들을 탓하기 전에 제가 몸담았던 중대신문 후배기자들을 탓하고 싶어요. 총학생회 선거 때마다 기자들이 취재할 때 후보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 못했기 때문에 검증이 안 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에요.
 
  사실 모두가 학내 정치로부터 무관심해질수록 손해를 보는 건 총학생회가 아니라 우리들이라는 걸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총학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면, 학교가 교양과목 줄이고 강의 당 학생 수를 마음대로 바꿔도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을까요. 이번 학기 댄스스포츠 수업을 듣는데 실기 수업인데도 40명이 수강합니다. 작은 에어로빅장에 비해서 사람이 많아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어요. 뿐만 아니라 현재 수강 중인 외국인교수님이 진행하는 영어회화수업도 40명이 넘어요. 사설학원도 15명이 정원인데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사설학원보다 질 나쁜 수업을 받아야만 하는 건가요. 강의당 학생 수 정도는 애교에 불과해요. 어느 과는 학생들과 상의도 없이 없앤다고 했으니까요. 얼마나 학교가 학생을 졸로 생각했으면 학과 폐지 등과 같은 중차대한 일을 해당학과 학생들과 심도 있는 논의도 없이 진행할 수 있었을까요. 
 
  근대를 연 두 사건을 보통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이라고 하지요.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에 근대사회는 권리들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들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흔히 사회적인 것의 발명이라고 하는데요. 개인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뤄낸다는 것이죠. 18세기에 발명된 사회적인 것을 왜 우리들은 요즘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있는지 아쉬울 따름입니다. 당장 취업 말고도 유의미한 일이 대학에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김기백 전직 기자(영어영문학과 4)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