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술소통학, 수사학, 기호학 등의 방법론을 가르치고 또 예술작품의 의미를 분석해 내는 것을 가르친다. 예술작품의 의미에는 줄거리라고 하는 보편적인 의미와 주제라고 하는 수용자 개인의 특수한 의미의 차원이 있다.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줄거리의 파악이 중요하지만 작품의 가치는 주제의 파악에서 온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이 주제의 파악을 강조하는데, 이때 학생들이 일순 당황하게 된다. 교수가 기껏 방법론을 가르쳐 놓고서는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방법론을 잊으라고 하기 때문이다. 주제는 이런 방법론으로는 이것, 저런 방법론으로는 저것 같아 보인다. 방법론은 너무나 많거니와 또 절대로 주제에 도달하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문만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면 왜 방법론을 가르칠까? 그것은 주제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다. 주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알기 위해서 단 둘이 내밀하게 만나야 하는 것처럼, 작품과 일대일로 마주할 때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해서 주제가 파악 되면, 그때 딱 맞는 방법론이 잡히고, 이 방법론으로 파악한 주제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이 의미의 분석이다.
 
  나는 매 학기 초 1학년 학생들을 상담할 때면 1년 동안 과연 나는 누구이며, 내 삶의 의미 또는 가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고 말한다. 사실 이런 고민은 고등학교 때 했어야 옳다. 하지만 우리 청소년들은 대입의 무게에 눌려 이런 고민을 할 여유가 없이 대학에 들어오고 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아무튼 대학에서라도 한시 바삐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의 미래와 꿈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그러면 앞으로의 대학 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떤 과목들을 들어야 하고, 어떤 전공으로 나아가야 할지, 말하자면 시간과 재정의 낭비 없이 가장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나는 1학년 말에 다시 학생을 만나 상담을 하게 되면 이제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더 이상 망설이거나 뒤 돌아보지 말며 그냥 그 길로 냅다 달려가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재산이 많건, 뉴욕에서 바삐 살건, 아마존의 숲에서 느리게 살건 일을 한다. 일은 삶의 조건이고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낙원에서 추방된 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땅으로 인해 근원적으로 일과 소외된 삶을 살게 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일이 소외된 노동, 희망 없는 소모전이 아니라, 정체성과 가치가 확장되고 행복의 원천이 되는 현장으로 바꿀 수 있을까? 답은, <우리가 충분히 고뇌하고 후회 없이 땀 흘려 준비할 때 가능>이다. 근원적 소외는 해소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최소한 우리 스스로는 이 소외를 극복 했노라고 말 할 수 있다. 나의 20년 교육경력은, 자신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삶의 주제를 파악한 후 합당한 방법론으로 철저하게 미래를 준비한 학생들은 지금 모두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며 만족한 삶, 기여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증거한다.
 
서명수 교수(유럽문화학부)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