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대한민국의 여름은 한마디로 ‘충격과 위기의 계절’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선거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리는 아직도 민주주의의 기초가 권력에 의해 위협받는다는 사실에 충격과 위기의식을 느꼈다. 국민 여론이 들끓었고 많은 대학의 총학생회와 평학생, 교수, 시민단체와 종교인 심지어 청소년들까지 현 사태를 비판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그러나 중앙대(서울캠퍼스)의 입장은 끝내 침묵이었다. ‘좋아요’총학생회는 중앙대학교의 시국선언에 관한 재학생 표결을 실시했고, 투표율이 15%에 그쳐 시국선언 계획을 백지화한다고 밝혔다. 
 
  상당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국기문란 사건조차도 대학생들의 두터운 정치 사회적 무관심의 벽을 뚫을 수 없었던 것일까. 취업, 곧 생존이자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향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국정원 사태 또한 정치꾼들의 그저 그런 진흙탕 싸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그러나 깊이 헤아려보면 민주주의야말로 진정 우리들 생존의 토대이고 더 나은 삶의 근간이다. 국민이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과 사회성원들의 여론마저 권력의 손아귀에 놀아난다면 결국엔 누구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가난하고 굶주렸던 시절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드높았고 우리의 선배들은 민주화를 위해 많은 피를 흘렸다. 마땅히 오늘날 중앙대의 학생들 또한 사회의 젊은 지성인들로서 시국선언에 동참하여 불의에 대한 정당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어야 옳았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사회원칙을 지켜야 하는 민주시민의 의무이자 권리다. 그러나 중앙인들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내는 것에도 소극적이었다. 불의에 침묵하고서도 우리가 ‘의혈-정의를 위하여 흘린 피’를 운운할 수 있는가.
 
  총학생회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학우들의 뜻을 모아 현 사태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도한 점은 합당하다. 그러나 (애초에 유효 투표율을 밝히지 않았고, ‘정책투표’라는 모호한 문자 한 통으로 공지한 후 단 7시간 만에 투표를 마감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총학이 제시한 선언문의 내용에는 문제가 있다. 선언문은 김대중 정권 당시 국정원의 불법 도감청행위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4년 총선 당시 특정정당 지지발언에 침묵했던 우리의 ‘비겁했던 과거’를 반성한다. 그러나 전자의 사건은 그 전말이 밝혀진 2005년 정부가 즉각 사과하였고 후자의 사건은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발언으로서 정보기관의 대선개입과는 차원이 다른 경우다. 군사독재 시절 정보기관이 자행했던 민주주의 유린의 유구한 역사나 지난 정권의 민간인 사찰 등은 과감히 생략한 채 특정 정권의 사례만 꼬집은 것은 사실 관계상 오류이며 국정원의 대선개입 비판이라는 논점을 흐릴 수 있다. 더구나 ‘댓글 3개가 대선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겠는가 하는 의문은 차치하고서라도’라는 표현은 스스로 시국선언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이다. 국정원이 증거인멸을 위해 지속적으로 댓글을 삭제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 아니던가. 선언문이 발표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총학이 진정으로 시국선언을 할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의혈탑 앞에 떳떳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대학을 생각한다. 대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혹자는 대학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시국선언에 반대했을 것이다. 의혈중앙은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유린 사이에서도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혹자는 비판적 지성으로서의 대학은 이제 지나갔다며 시국선언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배움은 무엇을 위한 배움인가.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국선언 논란이 우리 중앙인들에게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조원영 학생(정치국제학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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