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면 없는 대로 살라는 '미친 소리'
기본적인 생활하려면 발 벗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생활비에 치이는 대학생
유행가의 한 대목. “내 숨을 막는 더러운 돈. 없으면 없는 대로 행복하게 살자, 미친 소릴까?”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자는 노래다. 가사처럼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노래에서 자문하듯 돈 없이 행복하게 사는 삶은 ‘미친 소리’란 말을 듣기 딱 좋다. 대학생도 마찬가지다. 중대신문이 149명의 중앙대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은 약 64%다. 친목 도모를 위한 술자리 한 번에도 만 원이 훌쩍 넘는 요즘 세상에 돈의 주인으로 사는 사람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식비에 떠밀려 알바 시작= 이재하 학생(광고홍보학과 1)은 과 생활에 푹 빠져 바쁜 1학기를 보냈다. 동기들과 어울려 놀면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저녁은 거르기 일쑤였다. “기숙사 식당은 저녁 7시면 문을 닫아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어요.” 매번 컵라면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 늦게까지 영업하는 식당을 찾게 됐다. 그렇게 나가는 외식비가 매달 15만 원 정도였다. 이재하 학생은 이번학기 기숙사를 나와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하숙집을 택했다. 생활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도 시작하게 되면서 과 생활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과 생활에 지장이 커요. 동기들이 모여 있을 때 저는 일을 해야 해요.”
일하지 않고는 맘 편히 놀 수 없어= 갓 입학한 새내기에게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대학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로망이다. 하지만 술자리가 반갑지만은 않은 학생도 있다. 생활비가 떨어진 한윤수 학생(가명·사회대)에게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가시방석이나 마찬가지다. 돈이 없어 집에 가야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맴돌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할 일이 있다 둘러대고 쫓기듯 술집을 나왔다. “분위기 망친다며 가지 말라고 했던 동기들의 야유가 지금도 생생해요.” 지난 7월 그는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카페 알바를 시작했다.
즐기고 싶으면 일해야= 대학생은 공부만 하라는 법 있나. 문화생활은 대학생이 누려야 할 권리 중 하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는 대학생이 문화생활을 즐기기란 쉽지 않다. 콘서트를 좋아하는 장경염 학생(광고홍보학과 1)은 작년에 식당 서빙알바를 한 경험이 있다. 그가 문화생활에 쓰고 있는 돈이 적지 않기 때문. 콘서트에 갈 때마다 4,5만 원이 지출된다. 예매에 실패하면 비싼 자리만 남아 콘서트 갈 생각은 접어야 한다. “방학 때는 매달 3번, 학기 중에는 매달 1번 정도 콘서트에 가서 수십만 원이 깨지는 건 기본이에요.” 장경염 학생이 원하는 자리는 비싼 명당이 아니다. 그저 콘서트에 갈 수만 있다면 만족이다. “좋아하는 가수가 내한공연을 온 적이 있는데 티켓 한 장에 10만 원이 넘어서 갈 수 없었어요.”
외모관리 비용에 허리가 휜다= 한창 꾸미고 다닐 나이 20대. 여학생들에게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거나 백화점에서 옷을 사는 것은 유난스럽지 않다. 방학 동안 영화관 알바를 했던 김새봄 학생(영어영문학과 3)은 미용실을 찾았다. 파마 하려고 했으나 가격을 듣고는 이내 망설였다. “긴 머리 여자가 파마하려면 20만 원 정도가 들더라고요. 흑석동이 잘 사는 동네도 아닌데 미용실이 다 그렇게 비싸요.” 박수연 학생(간호학과 1)은 커트와 파마를 하고 13만 원을 냈다. 그는 품위 유지에 쓰는 비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하는 데 이 정도는 들지 않나요? 여대생들이 입는 원피스 하나도 보통 3만 원에서 5만 원정도 하는 걸요.” 이제 대학생에게 이 정도 물가는 익숙하다.
오가는 데도 돈이 줄줄 새= 박수연 학생이 골치를 앓고 있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교통비였다. 통학하는 그의 하루 교통비는 2,500원 정도. “적은 금액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매일 2,500원이 나간다고 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에요.” 지난 방학 박수연 학생은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시급 5천 원짜리 단기 알바를 뛰었다.
중앙대 학생들은 크게 식비·품위유지비·유흥비·교통비·문화생활비 항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기본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 일해야 하는 대학생들. 없으면 없는 대로 살라고 강요하기엔 어깨의 짐이 너무나 무겁다. 20대의 숨을 턱 하니 막고 있는 ‘더러운 돈’ 앞에서 부족해도 행복하게 살자는 말은 ‘미친 소리’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