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기만 해도 깝깝하다, 그래서 우리는 외친다. 18!

 

※이 기사는 모두 중앙대 학생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알립니다.

 

▶치킨집이 증발했다

 리 사랑의 결실로 14명의 아가가 생겼다. 2년 전 처음 만난 이후 그녀의 보드라운 가슴살과 탱탱한 다리 살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녀만을 찾았다. 그녀의 살과 쪽쪽 입을 맞출 때마다 나는 황홀경에 젖어들었다. 수많은 절정과 시도 끝에 그녀는 나에게 2세를 선물했다. 그녀는 바로 네네치킨 공덕 1호점. 냉장고에 붙어있는 14장의 쿠폰 아가들을 보라! 뿌듯하지 않은가. 손오공이 드래곤볼 7개를 다 모았다고 해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은 쿠폰 아가 14장을 통해 그녀를 만나는 날, 한껏 들뜬 마음으로 네네치킨 공덕 1호점에 전화를 걸었다. 후라이드? 양념? 네네치킨 하면 오리엔탈 파닭이니까 돈 좀 더 들더라도 그걸 시킬까? 온갖 상상에 군침을 삼키고 있는 그때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 달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린다. 털썩. 그녀가 14장의 사랑의 결실을 남겨두고 떠났다. 이게 진짜일 리 없어! 하지만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 봐도 수화기 너머 대답은 다르지 않았다. 네네치킨아, 14장의 아가들이 길을 잃었어. 싱글대디로 살고 싶지 않다. 공덕 1호점, 돌아와!

 
 
 
 ▶자취방의 Rainism
  드미컬하게 바닥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이 깬다.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천장을 뚫고 진격의 손님이 오셨다. 중앙대 근처 집값은 가난한 학생을 울게 만든다. 보증금 오백에 월세 삼십은 기본, 조금 살만하면 천에 오십은 껌값이다. 얼마 전에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에는 ‘백에 삼십 : 잠만 잘 분만 오세요’라고 적혀있던데 대체 어떤 집일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왜냐면 보증금 천만 원이 넘는 내 자취방은 나름대로 살만한데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비가 새니까. 똑똑. 물이 새는 천장에는 노릇노릇하게 얼룩이 졌다. 한숨 한 번 쉬고 천장 한 번 보고. 살다 살다 별 일이 다 있다. 수재민, 난민이 따로 없다. 방에도 비가 내린다.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 이제는 익숙하게 일어나 바닥에 수건을 깔고 양동이를 늘어놓는다. 곰팡곰팡한 비 냄새가 방 안에 가득하다. 심지어 낭만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21세기에 집에 비가 새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무슨 양철 슬레이트 지붕 집에 사는 것도 아니고. 인간극장 다큐멘터리 주인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불우한 대학생이 바로 여기 있으니까. 
 
 
 
 ▶제가 바로 꽐라여관 주인장입니다
 요한 건 내가 자취를 한다는 사실과 꽐라들은 항상 막차를 놓친다는 사실이다. 신명나게 어깨춤을 추고 있던 개강총회 뒤풀이 자리에서 학생회 오빠가 나를 부른다. “미선아, 너 자취하지?” 탕! 오늘 밤새 계속될 꽐라 마라톤의 출발을 알리는 총성 소리다. 긴박한 마라톤의 시작을 민희가 알린다. 항상 남자 선배 어깨에만 기대자는 민희는 오늘도 훈남 오빠 어깨에 머리를 뉘고 있다. 눈꼴 시린 민희의 머리를 떼어내고 학생회 오빠의 등에 실은 뒤 자취방으로 달렸다. 꽐라들이 언제 입에서 불꽃축제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바삐 움직여야 한다. 돌아오자마자 두 번째 주자가 김치전 반죽을 해놓고 나를 기다린다. 학생회 오빠의 등에서 금방이라도 분출할 것 같은 유미의 입을 틀어막고 또 집으로 뛰었다. 결국 유미의 입에선 김치전이 샜지만 이건 오빠한테 비밀. 술집 계단에서 울고 있는 지아도, 포크를 찾겠다며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수영이도 우리 집에 가둬놓고 한숨을 돌린다.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집에 가면 김치전에서 헤엄치고 있는 꽐라 마라토너들을 만날 수 있겠지. 벌써 스멜~이 느껴진다. 
 
 
 
 ▶수원 사는 게 죄냐?
 리출석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오전 수업이 있는 날은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가 없는 출근 시간 러시. 아침 7시에 나가도 출근시간이고 8시에 나가도 출근시간이고 9시에 나가도 출근시간이다. 우리 집은 수원. 자취를 하기엔 애매하고 통학을 하기엔 너무 먼 수원이란다. 출근길 1호선, 숨을 참으며 개미 떼같이 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낑겨있다. 이때 참을 인자를 그리며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욕이 절로 비집고 나온다. 학교에 가려면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갈아타야 하지만 그게 항상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인파에 밀려 엉뚱한 역에 내리게 된다. 게다가 여자들의 킬힐에라도 밟히는 날엔 정말 그 굽을 분질러 놓고 싶다. 상도역에 무사히 내리면 숨돌릴 틈도 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뛴다. 1교시를 앞둔 지금, 상도에서 정문까지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 또한 잘못된 선택이었으니, 인산인해를 이루는 버스 속은 찜질방을 방불케 한다. 왜 상도에서 정문까지 가는 데 20분이 걸리는 걸까. 차라리 뛰어갈 걸. 이번학기도 지각왕 확정!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 수업 10분 후 휴강공지 문자를 받는다면?
 
 ▶안성캠에서 운수 좋은 날
 기하게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벌떡 일어났다. 안성캠에서 수업 듣는 날이라는 것을 몸이 기억한 걸까. 문예창작을 복전한 후로 전공 수업이 있는 날마다 서울에서 안성까지 통학하고 있다. 게으른 탓에 항상 지각하기 일쑤였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운이 좋다. 정류장에 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셔틀버스가 왔고 수업시간에 딱 맞게 강의실에 도착한 걸 보니 일이 잘 풀리려나 보다. 근데 교실, 너 되게 낯설다. 수강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어야 할 때인데. 앉아서 주위 눈치를 봤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그 찰나! 문자가 띠링띠링하고 왔다. 불현듯 운수 좋다고 생각했던 오늘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설마 하는 생각이 스치는데… ‘교수님 개인사정으로 휴강합니다’ 눈에서 흐르는 이거, 눈물 아니지? 나 안성까지 셔틀버스 타고 왔는데. 심지어 오늘은 일찍 일어났는데. 갑자기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꼴이 되어있었다. ‘에이 오라질 년! 도대체 뭐가 문제야! 수업을 왔는데 왜 듣지를 못하니. 왜 듣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먹어는 봤나? 바퀴벌레 튀김
 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때는 동이 터오는 아침 6시. 새벽까지 과음으로 분노한 위장의 반란을 중국집에서 다스리고 있던 중이었다. 깐풍기 몇 개를 먹다가 갑자기 ‘이건 깐풍기의 질감이 아닌데?’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각. 왜 깐풍기가 이렇게 딱딱한 걸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바스락 거리는 뭔가의 껍질이 혀끝으로 느껴졌다. 섹시한 그녀의 등껍질을 음미할 새도 없이 중추신경이 씹어 뭉개려는 턱을 제지시켰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지를 뽑아들어 애써 그녀를 입 밖으로 밀어냈다. 하얀 휴지 위에 가련하게 누워있는 그것이 처음엔 웬 커다란 씨앗인 줄 알았다. 하지만 깜찍한 더듬이가 내 숨결을 따라 춤추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구역질이 일었다. 그녀는 내가 익히 알던 이였다. 왜 모르겠는가. 음습한 자취방에 쳐들어와 한밤중에도 나와 달밤 체조를 즐겼던 그녀를. 잡힐 듯 말 듯 나를 애타게 만들었던 그녀를! 죽어서라도 나와 키스를 나누고 싶었던 걸까. 결국 내 단골 중국집에도 발길을 끊게 하고 말았던, 잔인한 그녀의 이름은 바퀴벌레…….
 
 
 
 
▲ 개찰구 안에서 잔액이 부족하다면?
 
 ▶개찰구, 너의 거절은 거절한다
 천 몇백 원이 남았더라? 친구랑 실컷 놀고 상도행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건대입구역으로 갔다. 교통카드 잔액이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과연 찍힐 것인가! 삑. 사용금액 1,050원, 잔액 50원으로 무사히 통과했다. 잔액 50원을 보니 딱 맞춰 썼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도역에 내려 다 쓴 교통카드를 개찰구에 찍는데 개찰구의 그녀가 잔액이 부족하다며 앙칼지게 말한다. 저기 아가씨, 나가는데 어떻게 잔액이 부족할 수가 있어요? 아까 지하철 탈 때 말씀하셨어야죠. 설마 하며 다시 한 번 카드를 대자 개찰구녀의 무자비한 대답이 들려온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건대입구역에서 상도역까지는 14.9km, 10km가 넘는 거리에는 초과요금 100원이 붙는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어쩔 수 없이 충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교통카드 충전기를 찾는데 쟤는 또 왜 개찰구 밖에 있는 거죠? 그렇다면 이제 이곳을 나가는 방법은 단 하나. 주위를 살피며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다. 몇 발자국 뒤로 가서 달릴 준비를 한다. 쓰리, 투, 원! 그 날 내 안에 숨어있던 허들본능을 보았다.
 
 
 
 
▲ 오전 8시 55분이나 오후 2시 55분에 법학관에 도착한다면?
 
 ▶수업 5분 전인데 법학관이 미쳤어
 백삼호. 5분 후에 시작하는 전공 수업의 강의실은 법학관 팔백삼호였다. 456교시 R&D센터에 이어 789교시 법학관 수업이다. 교수님이 부처님 같은 따사로운 자비를 베풀어 일찍 마쳐주지 않을까하는 꼼수로 초롱초롱하게 수업을 들었건만. 교수님은 간만에 느끼는 제자의 열정에 감격해 칠판을 빼곡하게, 수업시간도 빼곡하게 채우셨다. 덕분에 현재 수업 시작 5분 전, 내 위치는 법학관 지하 일층. 엘리베이터 앞에는 정겨운 중앙인들(그러나 지금은 ‘적’인)이 지네다리만큼 와글와글 줄을 서 있다. 엘리베이터가 하느님 강림하시듯 지하 일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면서 빛이 새어나오는데 천국의 광경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내가 발을 들인 순간, 삐! 하고 경고음이 울리는 게 아닌가? 모두의 눈초리가 화살처럼 온몸에 꽂힌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계단으로 도망쳤다. 계단도 사정은 비슷하다. 명동과 맞먹는 인간체증. 위로 올라갈 수도, 아래로 내려갈 수도 없다. 눈에서 땀이 흐른다. 단언컨대 법학관은 가장 완벽한 과포화 상태다. 
 
 
 
 ▶내 여자친구는 등골브레이커
 지장도 맞들면 낫지! 오래된 여자친구 동동이(애칭)가 같이 시험공부를 하자며 카페로 날 이끈다. 가만히 있어도 봄바람이 불고 벚꽃이 휘날리던 때는 물론 지났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여자친구가 하자는 데 해줘야지. 오래간만에 하는 공부 데이트에 설리설리 두준두준한 마음으로 카페에 도착했다. “오빠, 난 피칸프랄린탐앤치노!” 응? 저 계집애가 나보고 지금 사라는 거지? 사귄 지 일주일 된 파릇파릇한 커플이었다면 당장 내가 샀겠지만 너랑 나는 다르잖아. ‘설마 저녁도 내가 계산하겠어?’하는 생각으로 탐앤탐스인지 덤앤더머인지를 계산했다. 하지만 어째서 불행한 직감은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나. 저녁을 다 먹고 계산대를 향해 함께 걸어갔지만 그녀는 내 등 뒤를 쌩하고 지나쳤다. 잠시, 저 계집애가 지금 문 열고 나간 거 아니지? 걸신들린 듯 와구와구 먹어치울 땐 언제고 이미 문밖에서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고 있는 그녀. 너,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게 무슨 말인지는 알고 쓴 거니? 그럼 어디 한 번 카드 영수증도 맞들어 볼래?
 
 
 
 ▶오늘 팀플 회읜데 아무도 안와
 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줄 알아요. 웃으면서 오냐오냐 해주니까 이 인간들이? ‘우리 슬슬 모여서 팀플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한마디가 화근이 됐다.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던 팀원들이 딱 걸렸다는 듯이 날 조장으로 모는 게 아닌가. 울며 겨자 먹기로 자료도 찾고 대본도 만들었는데 정작 모이기로 한 오늘, 아무도 오지 않는다. 어디냐는 카톡에 숫자는 계속 사라지는데 답장은 없다. 약속 시간을 이미 넘겼는데 약속 장소에는 나홀로. 숨바꼭질하자는 것도 아니고. 새내기 조원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한참 후에 받는다. “저 거의 다 왔어요.” 거의? 어디냐고 묻는 말에 또 한참 뜸들인다. 왜 뜸들여! 밥짓냐! 나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당산요.” 당산??? 다아아앙산? 거기가 학교 5분 거리도 아니고 다 오긴 뭘 다오나 싶다. 하늘이 노래지는 걸 느끼며 전화를 끊었다. 이번엔 고학번 선배님께 전화를 드렸다. “미안. 오늘 할머니 제사라….” 이 인간은 필시 팀플 날마다 친척들을 팔아먹으리라. 아까 시켜놨던 카페라떼가 식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차게 식는다.
 
 
 
 ▶주몽 뺨치는 여후배의 활쏘는 실력
 많이도 쏘더라. 남자 선배들에게 날리는 큐피드 화살. 신입생 환영회 날, 아가들의 장기자랑을 보겠다고 도서관에 붙어 있던 화석부터 집에서 게임하던 조상님까지 우르르 몰려들었다. 선배들이 보러 온 보람도 없이 시시한 장기자랑이 계속되던 그때, 왕년에 놀아본 풍채의 여자 신입생이 무대로 올라왔다. 수줍은 자기소개 후 신청한 노래는 소녀시대의 <Hoot>. 선곡부터 알아차려야 했다. 그녀가 만렙짜리 큐피드 화살을 장착하고 왔다는 것을. ‘우~ 어딜 쳐다봐 난 여기 있는데~’라는 가사와 함께~ 쏘세요! 마치 주택복권 추첨하듯 남자 선배들 가슴에 화살이 팍팍 꽂힌다. 주먹을 부르는 애교 눈빛과 춤사위는 오롯이 남자 선배의, 남자 선배에 의한, 남자 선배를 위한 퍼포먼스였다. 여자 선배도 화살 맞을 줄 아는데……. 하지만 대부분의 여자 후배들은 남자 선배에 사족을 못 쓴다. 남자 선배들이 지나갈 땐 ‘(꺄르르)오빠~ 안녕하세요!’라며 눈웃음치더니 여자 선배들이 지나가면 못 본 척 바쁜 척이다. 여자 후배들, 남자 선배 편력은 이제 그만! 특히 너, 그때 네 화살은 Trouble! Trouble! Trouble!
 
 
 
 ▶역시 퀴즈 날은 안 가야 제 맛!
 번 시간 퀴즈였는데 너 어디야? 왜 안와? 친절한 동기의 카톡이 화면 위로 깜빡깜빡거린다. 멍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 시간을 확인하니 지금은 오전 10시 20분. 숨이 턱 막혔다. 마라톤 42km를 달린다 한들 지금처럼 숨이 막혀올까. 온 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 느껴진다. 9시에 시작하는 수업은 10시 15분이면 끝나고도 남는다. 환자분의 학점님은 이미… 운명하셨습니다. 의사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내가 퀴즈 날 잔다고 수업을 못 가다니! 그것도 강의실 5분 거리 기숙사에 사는데! 멘탈이 으스러지다 못해 가루가 되어간다. 그 때, 핸드폰 알람이 시끄럽게 울린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알람을 껐다. 놈팽이 같은 알람 놈, 아까는 안 울리더니 이제와서 울리는 건가. 나는 지금 굉장히 화가 났어. 깨우지도 않고 자기 혼자 나간 룸메도 미워진다. 내 시간표 뻔히 알면서 잔망스럽기 그지없다.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성적표에서 만날 c가 벌써부터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아, 재수강이 많아 슬픈 짐승이여…….
 
 
 
 ▶사랑도 환불이 되나요
 랑이 밥 먹여주나. 바닥 치는 학점과 텅 빈 통장 잔액에 난 결심했다. 그와 헤어지기로. 심중한 새벽, 고민 끝에 내 손은 이미 전송버튼을 스쳤다. 아침이 되자 그가 메시지를 읽었나 보다. 카톡! 카톡! 카톡! 따지듯이 문자가 들어온다. 그가 내게 매달려도 난 단호하게 거절하겠노라 다짐했다. 주먹 불끈쥐고 그를 밀쳐내기라도 하듯 밀어서 잠금 해제. 미친 듯이 쏟아지는 수십 통의 카톡. 엄청난 스크롤의 압박이 느껴진다. 내려도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그것엔 우리의 두 달간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서울대공원, 미스터피자, 죠스떡볶이, 공포 영화와 팝콘……. 결론은 120만 원. 추신도 달려 있다. 헤어질 거면 이 중 절반을 내놓으라고! 당돌하기도 하지. 하지만 머지않아 이 감정은 분노, 허탈, 공포로 전이됐다. 이게 말로만 듣던, 페이스북으로만 보던 사이코? 나한테 쓰는 돈은 하나도 안 아깝다더니 이제 와서 무슨 소리니? 내가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사랑을 환불해내라 할 수가 있지? 그럼 넌 우리가 만났던 시간을 환불해내!
 
 
 
 ▶지하철 안 머피의 법칙
 랑랑랑~ “지금 들어오는 열차는 이 역에 정차하지 않는 신논현행 급행열차입니다.” 지하철 안내방송이 거슬리기 짝이 없다. 왜 꼭 내가 타려고 할 때마다 열차는 이렇게 느려터진 건지. 날 위한 급행열차는 없을까. 5시간 같았던 5분이 지나고 열차가 들어온다. 이제 깃털처럼 폭신한 좌석에 앉을 수 있다. 스크린 도어가 열리자마자 들어간 열차는 만석. 하. 조금만 더 참자. 손잡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레이더망을 가동한다. 모두의 마블에 빠져서는 정신을 못 차리는 한 덕후남이 그곳에 있다. 그래, 왠지 네가 다음 역에서 내릴 것 같구나. 절대 네가 만만해서 그러는 게 아니란다. “이번 역은 신도림역입니다” 또각 또각. 하필이면 내 옆으로 한 여자가 다가온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열차에 가득 퍼진 그녀의 향수 냄새 때문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이때였다. 내가 이 여자를 쓱 한 번 훑는 사이에 오덕 자식이 그 여자에게 자리를 내준 것이다. 얄미워. 이 지하철엔 머피 아저씨의 영혼이 서려있나 보다. “내리실 분은 오른쪽입니다. 승객 여러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는 개뿔.
 
 
 
 ▶선배,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가 서쪽에서 뜬다 해도 이렇게 놀랄까. 부스스 눈을 떴을 땐 그 선배가 내 곁에 있었다. 응? 누구라고? 내 심장이 반응하는 바로 그 선배! 선배가 바로 내 옆에 앉아 있는 것이다! 내가 이 나이 먹고 MT를 다 오게 한 장본인. 내가 오늘만을 위해 팀플도 가뿐히 스킵했더랬지. 속에선 대책 없이 먹은 소주와 맥주들이 위벽을 찰싹찰싹 때리며 휘몰아치는데. 입만 열면 신물이 올라올 것 같다. 어지럽다. 혼란스럽다. 울렁거린다. 그 와중에 선배의 입술만 보이는 건 어떡해. 선배도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어느새 우린 입을 맞추고 있었다. 술 취한 한쌍의 바퀴벌레였다. 이 밤이 제발 끝나지 않길 바란다. 동이 텄지만 어젯밤의 생생한 기억에 무한 이불킥을 한다. 이게 볼터친지 홍조인지. 혼자서 히죽이며 선배가 숙소에서 나올 때까지 문밖에서 기다렸다. 버스에서 같이 앉으려고. 그런데 웬 girl? 선배 옆에 딱 달라 붙어서 나오는 저 계집앤 누구니? 차라리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 선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 인사를 하며 그 여자애와 유유히 버스에 올라탔다. 아 참 가볍다. 나 뭐 된 거야?
 
 
 
 ▶학식 다이어트라고 들어는 보셨나
 도면밀하게 식단표를 훑었다. 오늘은 조금 다르리라는 믿음으로. 허나 오늘 저녁 학식 메뉴는 쌀밥, 콩자반, 콩나물국, 계란말이, 김치. 사람이 삼 일 전에 먹었던 점심 메뉴를 기억 못 하면 치매라고 하던데, 난 3일전에 먹었던 것도 일주일전에 먹었던 것도 좔좔 외울 지경이다. 풀 위주의 참으로 담백한 식단. 이로써 학식이란 참 다이어트 하기 좋은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맛. 그래도 나의 침샘들은 그간 심심했던 입 속을 축이느라 신명이 났나 보다. 나의 강력한 아밀라아제에 알알이 녹아드는 이 맛. 공기 반 밥알 반으로 채운 헛배를 부여잡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 문틈에선 광명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얼쑤. 풍경이 가관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황금빛 찬란한 A+++ 한우를 뜯고 있는 게 아닌가. 달궈진 그릴 위로 등심 슬라이스가 물결치고 마늘들이 무리 지어 움직인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난 젓가락을 집어 들고 식신과 접신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오  신이시여. 이걸 어찌하란 겁니까. 나의 학식 다이어트는 오늘도 고기와의 밀당에 흔들리고 있다.
 
 
 
 ▶에어컨은 나 홀로 집에 가동 중
 시간도 못 잤으니 정신이 나갈 만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면 ‘세상에 이런 일이’ 감이다. 난 분명 자취방을 나서기 전 꼼꼼히 체크했다. 형광등도 껐고, 창문도 닫았고, 수도꼭지도 꼭꼭 잠갔다. 완벽해. 방구석에선 머리카락이 나뒹굴지만 그건 다시 돌아와서 치울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홀아비 냄새나는 자취방을 떴다. 적어도 한 달 동안은 이 지긋지긋한 곳에 돌아오지 않으리.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무궁화호를 탄 지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에어컨’이 생각나는 걸까. 젠장. 엄마가 차려주신 밥 먹으면서 두 다리 쭉 뻗고 지내고 싶었는데. 이거 원 걱정돼서 제대로 놀 수 나 있겠나. 열차의 빵빵한 냉방 시설 덕분에 내 방의 한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만 같다. 사람도 없는 자취방에서 외로이 한기를 뻐끔이고 있을 에어컨. 창문도 꽁꽁 닫고 풀가동하다 천장에 고드름이 생겨있진 않을까. 그동안 전기세가 아까워 에어컨도 안 켜고 지지리 궁상을 떨었건만. 세금 빠져나가는 소리에 등골이 서려온다.
 
 
 
 ▶CC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
 즘은 또 어떻게 지내고 계시려나. 아무것도 모르던 새내기 시절 나의 마음을 뺏어 간 남자 동기. 한 3개월 만났으려나. 과 CC가 헤어지니 그 여파도 어마어마하다. 이분법 원칙에 따라 우리 학과는 두 개의 파로 나뉘었지. 그런데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내 절친 여자 동기와 그 자식이 사귄다는 소식이 풍문으로 들어오더구나. 이 미꾸라지 같은 놈아. 우리 학과 몇 번 분열했니. 아메바니? 끊임없이 campus couple을 반복한 자에게 결국 남는 것은 Campus champion이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일지니. 친구들의 눈칫밥 먹는 건 덤이다. Campus champion의 횡포에 많은 동기들이 휴학을 택했고 난 독강이 무려 5개다. 날씨도 선선해졌겠다. 가을 한철 무사히 지나가나 했는데, 이놈의 연애 전선은 이 캠퍼스를 그냥 지나치지를 않는구나. CC들도 오랜만에 숨통이 트이나 보다.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가 캠퍼스 여기저기서 떠돈다. 도서관에서 눈치 없이 애정행각 중인 무개념 CC. 밤만 되면 벤치마다 들려오는 입술 부딪히는 소리가 소름 끼치기까지 하다. 나 이러다 솔로천국 커플지옥 대주교로 등극할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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