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대신문 명함이 무색하지 않았습니다. 어색한 사명감이었지만 알리고 전한다는 기쁨에 매번 굽은 허리를 곧추 세웠지요. 동료 기자와는 우스갯소리로 “학부생 중에 학교 사정을 이만큼 아는 애들이 어디 있겠냐”며 피식하기도 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쓰기 위해 알았습니다. 자연스레 학교 사정은 곧 ‘내 일’이었고, ‘내 얘기’였지요.

  며칠 전 학교는 요즘 어떠냐는 제 물음에 한 선배가 답하더군요. “관심 없어.” 선배의 칼 같은 대답보다 놀라게 했던 건 내심 솔직한 제 반응이었습니다. “저도요.” 허허 웃으며 넘겼지만 서로의 근황보다는 학내 이슈가 익숙했던 터라 대화 내내 팥 없는 찐빵을 먹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제 중앙대 이슈는 선배와 저에게 모두 관심 밖인 ‘네 얘기’가 됐기 때문이지요.

  그간 중앙대는 계속 달렸습니다. 5년 간 캠퍼스의 지도는 여러 번 바뀌었고, 파격적인 조직 개편과 학문단위 구조조정도 단행됐습니다. 하지만 발전과 성장의 이름으로 진행된 굵직한 사업에는 크고 작은 출혈도 잇따랐습니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대학본부는 쉴 새 없이 변화를 꾀할 새로운 카드를 내놓았습니다. 아직 출혈이 그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지난 5년 간 대학본부는 흔한 당근 하나를 손에 쥐고 있지 않았습니다. 발전을 위한 채찍질 뒤로는 구성원을 위한 당근도 필요한 데 말이지요. 좋은 당근은 구성원들에게 좋은 ‘내 얘기’가 됐을 겁니다. 이즈음, 대학본부는 저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편집국 밖에서 피부로 느낀 중앙대의 삭막함이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닐 겁니다. 2008년, 2009년, 2010년… 사실 저마다 다른 하루가 모여있는 건데, 지금은 그저 모호하게 뭉쳐진 이미지처럼 돼버렸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관심 없는’ 구성원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는 집단은 없습니다. 혹자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당연히 내 집단이 아니냐며 우리를 질타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만난 취재원 중에는 ‘중앙대 학생들은 애교심이 없다’며 근심을 털어놓기도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다시 묻겠습니다. 왜 중앙대라는 내 집단에서 내 얘기는 없을까요.

  이런 맥락에서 중대신문이 준비한 2013년 아젠다 ‘가계곤란장학금 확대하자’를 보면서 내심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계가 곤란한 일부 학생일지라도 그들의 얘기를 들었고, 가려운 부분을 긁어줬기 때문입니다. 당장 중앙대가 교육역량강화사업에서 탈락한 것보다 내 장학금이 오르냐 마냐가 중요한 학생들이 더 많을 테니까요.
 
  언론의 ‘사회통합 기능’이란 뻔한 소리는 잠시 접어 두겠습니다. 그저 학생들의 ‘내 얘기’를 들어주면 되니까요. 9월입니다. 군 입대를 앞둔 저로서는 그저 그런 9월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이름만으로도 ‘네 얘기’를 듣고 싶은 계절,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김성호 전 편집장 (사회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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