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발표한 ‘2013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5∼24세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라고 한다. 인구 십만 명당 청소년 자살자 수는 2001년 7.7명에서 2011년 13명으로 급격히 증가했으며 2012년 청소년(13∼24세)의 11.2%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고 그 주된 이유는 성적 및 진학 문제(39.2%), 경제적 어려움(27.6%) 순으로 나타나 경쟁 제일주의로 치닫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사회 구조가 청소년 자살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한 해 동안만 약 37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니, 하루에 한 명 이상의 청소년이 자기 목숨을 끊고 있는 것이 OECD 국가 중 청소년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한국 사회의 현실인 셈이다.  
 
  올 여름 우리의 마음을 무너져 내리게 했던 해병대 캠프 사고를 비롯해 우리 아이들의 일상에 상존하고 있는 왕따 현상과 학교 폭력 등 각종 위험들은 우리의 아이들을 다그치고 닦달하며 죽음 가까이로 내모는 사회적 분위기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경쟁을 부추기고 생존 논리만 가르치는 정글의 법칙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한 이런 상황이 쉽게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꿈이라든가 이상이라든가 철학이나 시 같은 말들은 뜬구름 잡는 허황된 말로 경계 바깥으로 점점 밀려나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우리 아이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길 원하는지, 우리 아이들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기를 바라는지,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 사회는 살아 있는 사회라 할 수 없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숙제하듯 꾸역꾸역 해치우는 사람들로만 가득한 세상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타인에 대한 배려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좀처럼 갖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어찌 보면 고3의 삶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오늘의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파국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열차처럼 우리들이 올라탄 이 지독한 열차는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보다 더 잔혹한 열차에 오늘의 한국 사회가 올라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미제라블>이 그랬던 것처럼 <설국열차>가 수많은 패러디 영상물을 낳는 까닭은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 것인가?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재의 행복과 꿈을 저당 잡혀야 한다고 거짓 환상을 유포할 것인가? 남을 짓밟는 삶이 아니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이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한 삶이자 오랫동안 인류가 희구해 온 염원이었음을 이제는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1%만 행복하고 나머지는 꼭대기만 바라보며 기어오르는 사회, 누군가 곤두박질치지 않는 한 자리의 변동은 생기지 않고 그래서 대부분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뻔히 보면서도 ‘다른 문’을 꿈꾸지 않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철학이 부재하고 공감 능력을 상실한 한국 사회에 대한 책임을 이제 기성세대가 나눠져야 할 때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다른 문’이 저기 있다고, 벽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저 곳이 사실은 문이었다고, 꿈꾸는 자에겐 언제나 새로운 문이 보일 거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개강을 앞두고 나는 꿈을 꾼다. ‘다른 문’에 대한 꿈을. 그리고 내 영혼이 포획당하지 않고 그 꿈을 실천할 방법을 생각한다. 
 
이경수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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