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와 성적표는 교훈을 줍니다. 변화와 발전이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약속이 시간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습관은 손과 머릿속에 머물러 앉으며 시간은 가야 할 길을 점점 희미하게 문지르죠. 따라서 발전과 변화는 이전의 것들을 떨쳐내는 희생을 선결과제로 요구합니다. 발전과 변화에 희생이 불가피함을 사실로 가정한다면, 셋은 형제와 같을 것입니다.

 
  중앙대의 지난 4년은 끊임없는 변화의 연속이었습니다. 도서관 리모델링, 학과 구조조정, 계열별 부총장제 도입, 본분교 통합, R&D센터 건립 등 빠르게 진행되는 개혁의 깃발을 좇다보면 지나온 길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강도 높은 변화의 바람이 중앙대를 휩쓸었습니다. 쉽게 찾아오지 않는 변화를 이뤄낸 강력한 추진력은 어떤 의미로든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발전과 변화가 희생의 형제라면, 4년은 동시에 희생의 연속이기도 했습니다. 희생을 짊어진 학생들은 주로 통폐합 대상 학우들이었죠. 이 학생들에 대한 처우 문제로 많은 반발이 있었고 하루가 멀다하고 날선 언쟁이 오갔습니다. 이성적으로 대화를 시작하려다가도, 곧 감정 싸움으로 흐르곤 했죠. 
 
  그때의 날카로운 언어들을 지금 돌아와 생각해보면 아쉽습니다. 더 순화된 언어로 대화했다면, 더 존중했다면 보다 건설적인 논의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당시 중대신문은 다소 중립성을 견지했습니다. 그 때 중대신문에서 양 측이 얼굴을 맞대고 대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면 어땠을까요.
 
  이제와서 지난 일들을 끄집어내는 것은, 사실 모든 일이 아직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적잖은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조롱과 비방이 어떤 일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중대신문의 역할은 이성적인 대화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될 수 있을 터입니다. 적어도 더 많은 이들의 정제된 시선을 전달하는 것은 필요해보입니다.
 
  신문사를 마치고 나와 보니 학교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만큼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학생도 많았습니다. 개중에는 튼튼한 논리를 가진 사람도 있었고, 솔직한 감정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이런 친구들의 이야기를 신문에 기록해줬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가끔 생각해봅니다.
 
  중대신문에 여론을 실을 수 있는 기회는 크게 열려 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쑥스러워서, 이름 실리는 것이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라 이 자체에 벽을 느끼거나 방법을 몰랐던 사람도 많죠. 중대신문이 앞으로 이들의 입장을 전달해줄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을 것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여론을 모아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조금 더, 개혁에 드리운 그림자를 밝히고 숨가쁘게 지나온 행적을 반추하는 길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방호준 전 편집장 (연극영화학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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