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8일부터 개최되었던 제20차 국제 비교문학회(International Comparative Literature Association) 세계대회를 다녀왔다. “비평방법으로써의 비교문학”이란 대주제를 가지고 소르본느 파리 4대학에서 열린 이 대회는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700명이 참가했으며 160개의 세션 논문발표, 308개의 워크숍, 95개의 세미나가 열려 문학의 올림픽이란 말이 무색치 않았다. 나는 대회 이후 줄곧 우리시대에 넓은 의미의 “비교학”(comparative studies)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비교(比較)”는 오래된 진부한 용어이다. 그러나 이제 비교의 의미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비교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의 문제이다. 차이를 가치화하는 비교는 한 주체의 정체성 수립의 토대이며 타자에 대한 이해의 시작이다. 그것은 억압이나 비판이 아니라 대화와 교환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정태적인 단순화(단성적)가 아니라 역동적인 복합화(다성적)이다. 비교는 처음이나 끝, 중심이나 주변부가 아니라 조화의 중간지대이다.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점(占)이 아니라 선(線)이다. 비교는 정착과 정주가 아니라 이동과 이주(유목)이며 경계를 타고 넘어 공감하고 대화하는, 서로 섞고 융합하고 통섭의 길로 나가는 상호침투적 시공간이다. 비교는 이제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세방화(glocalization)의 새로운 문화윤리학이며 차이 속에서  하나가  되는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 시대의 종합인문학의 새로운 사유방식이다.
 
  나는 이와 같은 비교라는 인식소를 비교학적 상상력이라 부르고자 한다. 지독한 염천(炎天)의 열기 속에서도 이번 여름은 전지구적인 분쟁과 갈등으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자연(기후)과 인간 문명의 불화, 다른 민족과 종파 간의 폭력과 전쟁, 한반도 남북한의 대립, 정치판의 극단적인 분열이 끝이 안 보인다. 이러한 투쟁의 시기에 비교의 새로운 인식소인 관용과 대화정신을 역동적으로 작동시켜 차이를 존중하고 공감의 상상력으로 나아가자. 이제 참을 수 없는 폭염의 계절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저 지평의 끝에서 하늘과 땅이 만나듯 긴 호흡과 비전으로 문학이든 문화든, 학문이든 정치든, 경제든 과학이든, 비교학적 상상력을 전경화 하자.
 
  이것이 내가 파리세계비교문학대회장에서 내린 결론이다. 민족문학, 비교문학, 그리고 세계문학, 번역학과 문화제국주의,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이론 창출 등의 주제로 전 세계 5대륙에서 온 비교문학자들이 열띤 발표토론을 통해 이루어내고자 했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경계선 가로지르기와 방법론적 넘나들기를 통해 보편성을 드러내는 세계시민주의 문화의 다양성을 담보해내려는 비교학적 상상력의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은 통섭과 대화를 향한 인문학적 상상력에 다름 아니다. 모든 인간 학문의 방법론적 토대는 비교가 되어야 한다.
정정호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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