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저 / 동녘 / 264쪽

  “나이 마흔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말은 마흔 이전의 인생은 면책특권을 갖는다는 인상을 준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인생에서 ‘공소시효’는 없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산다는 건 말투, 표정, 몸짓에 인생을 새겨 넣는 과정이란 걸 모르는 거다.
 

  철학자 강신주는 1967년생이다. 마흔이 넘은 그는 스무 권이 넘는 책을 낸 알만한 사람은 아는 저자다. 그리고 무려 철학 박사다. 다소 몰인정하고 차가운 어감을 지닌 ‘철학자’라는 타이틀을 단 강신주는 얼굴은 어떨지 모르지만, ‘언어에는 책임을 질 줄 아는’ 저자다. 40년 넘게 성실하게 고민하고, 도전하고, 실패한 삶이 그 언어에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언어만큼은 신뢰할 수 있다.
 

  마흔을 훌쩍 넘긴 이 저자의 언어는 소중하다. 삶의 흔적이 담긴 이 언어에는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철학자’ 혹은 ‘(꼰대)지식인’의 그림자가 없다. 젠체하지 않는다. 가끔 욕도 섞고, 속인의 언어를 애정어린 손길로 다듬을 줄 안다. 언어와 태도를 보면서 그 사람의 계급과 학력 수준을 짐작하는 게 상식처럼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서 강신주의 언어에는 지식인 특유의 겉멋이 없다. 그 ‘언어’만으로도 강신주는 국보급 저자다.
 

 『강신주의 다상담』은 대학로 아지트인 ‘벙커1’에서 강신주가 진행한 강의와 상담 내용을 역은 책이다. 1편은 ‘사랑·몸·고독’을 2편은 ‘일·정치·쫄지 마’를 주제로 다룬다. 일종의 ‘처세서’다. 세상에 ‘자기’가 대처하는 방법을 분명히 그려준다. 그러나 항간에서 볼 수 있는 처세서와는 코칭 방법부터 다르다. 기존의 처세서가 직장 동료·상사를 내 편으로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면 이 책은 그들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코치한다. 직장 상사의 부탁에 분명히 ‘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충고한다.
 

  이 책에서 강신주는 망설이는 법이 없다. 물러서느니 차라리 죽음을 각오하겠다는 사무라이같다. 그 결기로 6가지 주제에 맞춰 내가 나답게 사는 법을 가르친다. ‘자신으로서 사랑하고, 자신으로서 살고 싶은’(2권 277쪽), 스스로 욕망하며 살고 싶은 사람들, 한껏 쫄아서 남들 눈치 보며 사는 이들에게 ‘이기적인 사람이 되라’고 당연하게 충고한다.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더라도, 관습을 벗어나더라도 ‘자기’를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강신주의 다상담』은 윤리적이지 않다.
 

  윤리와 철학은 층위가 다르다. ‘아내를 사랑해야 해’가 윤리적 문제라면 ‘왜 아내를 사랑해야 해’는 철학적 문제다. 그동안 주어진 윤리에 순응하며 살아온 모범생들과 정해진 경로를 이탈하면 손발이 떨리는 불안증세를 호소하는 이들에겐 이 책이 필요하다. 겉멋든 철학자의 ‘위대한’ 저서나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같은 경세서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면 속는 셈치고 책장을 열어보는 것도 좋다. 쉽게 내뱉지 않은, ‘자기 언어를 책임질 줄 아는’ 국보급 철학자의 인생철학은 언제나 쉽게 엿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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