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의 `자유헌정론1.2'(1960)은 이상적이고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유주
의에 대한 옹호이자 자유주의의 조직원리를 체현키위한 정치적 저술이다. 그
러나 이 책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라기 보다는 명확한 가
치판단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게 더욱 정확할 것이다. 19세기의
밀의 위치를 20세기에 와서 하이에크가 대신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단순한
계승자적 위치에서 한 발 더 전진해 고유한 `이상적' 자유주의론을 피력한다.

1부 자유의 가치에서 그는 서구문명의 성공을 가능케했던 원인을 `자유'라
는 가치에 대한 믿음과 추종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자유란 민주주
의적인 시민적 자유나 정치적 자유라는 통념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개인적 자
유의 영역만을 의미한다. `사람이 타인의 임의적 의지에 의한 강제에 처하게
돼지 않는 상태' 즉 강제의 부재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강제의 제
거는 "개인이 자신의 영역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는 조건을 창출해 냄
으로써 사적영역의 경계를 설정하게 될 때만이 가능하다"(49쪽)는 것이며,
타인이 도저히 침해할 수 없는 사유재산의 영역이야말로 자유의 성취와 조화
를 위해 근본적인 요소라고 밝히고 있다. 하이에크에 있어서 소유의 정도야
말로 개인의 자유를 재단하고 사고와 행동까지도 제한하게 하는 초법적인 기
제이지만 그는 경제적 진보로 인한 불평등의 결과를 필요악으로 간주한다.
나아가 의도적으로 조직화된 사회적 힘에 의해 지금껏 진보를 가능케 해왔던
자생적 힘이 위협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2부 자유와 법, 3부 복지국가에서의 자유를 통해서 하이에크는 국가와 자생적
질서로서의 시장과의 관계에 대해 논하고 있으며, 사회주의의 쇠퇴이후 등장
한 복지국가의 현실적인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을 평가하고 있다.

그는 자생적 질서인 시장은 의도적 질서의 유지자인 정부의 강제에 의지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끊임없이 국가의 의도적 개입을 제거하려는 노력
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이 강제의 부재라는 `자유'를 의미하는지 정부개입의
범위와 허용의 지점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이에크 또한 시장의 자유
와 정부의 개입이라는 딜레마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것만은 확실하다.
의도적이며 임의적인 힘에 대한 원죄적 부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의미에
서 자유주의적인 어떠한 기획들도 원죄에서의 탈출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 이
딜레마의 위협적인 모습이다.

이 저작을 통해서 하이에크는 인간문명의 진보를 가능케 했다고 믿는 보편적
기준으로서의 이상적 자유주의론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에 대한 소극
적인 입장과 대륙의 자유주의에 대한 일반적 옹호론은 그가 보수주의자들과
의 변별에도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한다. 진보의 성
취를 위해 구성원간의 불평등은 용인할 수밖에 없을뿐 아니라 이는 조세등의
수단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없다는 믿음이 그러하고 가진만큼 자유로운 존재
로서의 인간이라는 한계를 얘기할 때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가 말하는바 대로 급속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보수주의자들의 특징이지만
그의 이론역시 `진보'에 대한 일방적인 믿음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사회주의 국
가와 복지국가의 태동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주의'라는 이름하에 행해지고 있는 전세계적 경제질서의
재편과정이 하이에크의 `이상적' 자유주의와 일치한다는 생각또한 위험한 사
고이다. 하이에크는 문명의 진보를 가능케했던 자유주의적 전통을 계승해나
가는 과정에서 현실에 직접 적용가능한 일관된 사상체계로서의 자유주의라는
보편적 기준을 제시하려 노력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그의 자유주
의적 기획의 성공은 적어도 이상적 측면에서는 비관적이다.

근본적으로 시장은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상당부분 자생적일 수 없으며, 하
나의 자생적 질서가 또다른 자생적 질서에 대해 위협적 존재일 수 있음을 감지
한다면 말이다. 이것은 한국경제의 위기국면이 정경유착, 부패등의 자본주의
적인 천박함을 반영하고 있을뿐아니라 선진제국들의 개방압력에 처해 무장해
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취약성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
다.

최장규 <정치학 석사 4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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