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그 모습을 바꾼다. 과거, 수많은 설화의 각편이나 고소설의 이본이 이야기의 이러한 특성을 방증했다면, 리메이크나 OSMU(One-Source Multi Use)는 이야기의 변이 양상과 변모 과정을 드러내는 오늘날의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반복되는 이야기가 지겨울 법도 한데, 여전히 향유층은 하나의 이야기 A를 변이, 재창작한 또 다른 이야기 A′에 흥미를 느낀다. 특히 잊을만하면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새롭게 재창작하는 것은 TV사극의 주된 경향이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라는 전제는, 향유층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향유층에게 있음직한 사실을 추적하는 재미를 제공하므로 콘텐츠의 매력적인 소재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TV사극에서 실존인물 이야기를 반복해서 재창작하는 사례는 빈번하다.  


  한동안 장희빈을 다룬 TV사극이 뜸하다 했더니 적절한 시기에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방영 전부터 ‘조선 시대의 패션 디자이너’, ‘악녀가 아닌, 사랑스러운 여성’으로 재해석하겠다며 기존의 장희빈들과 차별성을 둔다고 홍보했었던 <장옥정>의 제작발표회에서, 감독과 주연 배우는 입을 모아 ‘진정성’이라는 키워드를 반복, 강조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장옥정>은 방영이 되자마자 판타지 사극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고, TV사극의 고증과 왜곡의 범위에 대한 논란을 가속화시켰다.

  
  논란 때문인지 ‘패션 디자이너 장옥정’, ‘선량하고 사랑스러운 여성 장옥정’ 컨셉은 극의 초반 몇 회에서만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후 드라마는 장옥정이 궁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녀가 되는 과정에 치중한다. <장옥정>만의 독특한 컨셉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애초의 포부와는 달리 장옥정은 결국 사랑에 살기보다 자신의 입지와 안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익숙한 장희빈’ 캐릭터가 되었다.


  언젠가 원형담을 활용한 스토리텔링 관련 강의를 진행하던 중, 한 학생이 TV사극이 방영되면 역사왜곡 문제가 항상 불거지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어느 쪽이 됐든 노선을 정한 답을 해야겠기에 “창작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TV사극이 역사교육을 담당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고 어렵사리 답했다. 지금도 그 생각의 큰 틀은 변함이 없다. 창작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남용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 콘텐츠, 그리고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호응을 전제로 만들어지고 그 생명력을 지속시킨다. 이러한 대전제를 상기한다면 향유층의 비난과 냉대를 감수하고서라도 실존인물을 뒤틀어 재해석하는 것은 무모하다. 기록을 무시하고, 이름과 몇몇 설정만 차용한 사극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이며, 또한 이 콘텐츠가 원형담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단순한 ‘진정성’ 어필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특히 TV드라마는 다른 플랫폼에 비해 모든 연령층의 접근성이 높기 때문에 평가 기준이 보수적이면서 엄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TV사극에서 새로움을 찾으면서도, 동시에 일정 범위의 재구(再構)기준이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실존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치중한 나머지, 실존인물과 역사를 밟고 올라서는 스토리텔링이 위험한 이유이다. 식상한 사후약방문이기는 하지만, 차라리 <해를 품은 달>처럼 아예 가상의 시공간을 전제로 한 퓨전사극을 표방했다면 장옥정은 사랑에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채영 강사(문화콘텐츠융합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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