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일백주년 맞는 김동리 소설가
  • 중대신문
  • 승인 2013.06.09 2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는 소설가 김동리 선생(1913~1995)의 탄생 1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 작가의 탄생 1백주년을 유독 추모하고 기리는 것은 그의 예술작품이 당대에 끼친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그를 재조명함으로써 작품을 빚어낸 그 시대의 상황과 작가의 사상을 파악하고 더불어 작품이 내뿜는 향기, 즉 심화한 예술의 감동을 향유할 수가 있다.


  김동리 선생은 1913년 경주에서 출생하여 1935년 조선중앙일보에 단편소설 「화랑의 후예」, 1936년 동아일보에 단편소설 「산화」가 연이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하여 1995년 작고하기까지 60년을 활발하게 창작생활을 해왔다.


  그는 우리 근대소설사에서 시금석이라 할 만큼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이 실로 크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했던 작가이며, 그 결과로 토속적이고 지방적인 소재에서 신과 인간 자연의 문제를 완벽한 소설 미학으로 승화시켜 한국소설의 결정체를 이루었다.


  또한 그는 1930년대 유진오와의 신세대 논쟁 이후, 본격문학과 신인간주의 문학사상으로 일관, 광복 직후 민족주의 문학 진영에 가담하여 순수문학논쟁을 벌이는 등 좌익문단에 맞서 우익 측의 민족문학론을 옹호한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뿐만이 아니다. 그는 서라벌예술대학 교수, 학장, 중앙대학교 예술대 학장, 예술원회장, 한국문인협회이사장, 한국소설가협회이사장, 문예·월간문학·한국문학발행인, 아시아 자유문학상, 3·1문화상 본상, 5·16민족문학상 수상, 국민훈장 동백장·국민훈장모란장 등을 받은 문학인으로서의 최고 경력자로 문단의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제자와 후배 양성에 열정을 쏟아 국내에서 가장 많은 소설가 제자를 두기도 했다. 특히 제자들에게는 어버이 같은 육친의 정을 베풀었으나 가르침에는 엄격하고 냉정했다. 맞춤법이나 문장이 정확하지 못하면 몇 번이고 거듭 지적하여 고치도록 하고, 상황설명을 몸소 행동으로 연출하여 바로잡아 주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작품으로 보여준 또한 노벨문학상 최종후보자(작품 을화)이기도 했던 작가 김동리, 그의 탄생 백주년을 맞아 기념사업회는 사뭇 거국적으로 선생의 전집(34권)발간과, 전국에 산재한 작품 소재지에서(하동·부산·경주 등)의 세미나, 김동리 작품 독후감 공모, 음악회와 저서, 도서와 서예전시회, 대표 작품 재조명 심포지엄 등을 계획하고 있다.


  훌륭한 작가의 사상과 작품의 향기는 후세를 사는 이들의 황홀한 정신의 양식이 된다. 우리 당대에 맞이하는 참으로 소중한 김동리 문학축제에 그를 연구하고 그의 작품을 탐독해 보면 어떨까 싶어 의도적으로 그를 역설해 보았다.

김지연 소설가 (김동리기념사업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