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ICIJ(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와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공동 취재 1차 결과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명단에 포함된 245명의 한국인 중 대부분이 사회지도층 인사인 것으로 확인돼 사회적 파문이 일었다. 지난 6일 발표된 5차 명단에 이르기까지 명단이 공개될 때마다 논란을 일으키며 ‘탈세’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조세피난처와 페이퍼컴퍼니. 조세피난처와 페이퍼컴퍼니는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탈세가 진행되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최경수 특임교수(경영전문대학원)를 만나봤다.

▲ 지난달 29일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탈세 혐의가 있는 23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한 국세청의 전경. 사진 조은희 기자

 

최경수 특임교수 경영전문대학원

 

 

 

 

 

-최근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탈세한 사람들의 명단이 공개돼 많은 파문이 일었다. 조세피난처가 뭔가.
“세금 부과를 피하거나 절세를 할 수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조세피난처는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저세율국으로 모나코와 싱가폴 등이 해당되고, 두 번째는 외국에서 얻은 소득에 대해선 과세하지 않는 국가로서 홍콩과 파나마가 있다. 세 번째는 아일랜드와 스위스 등 세제상 우대조치가 있는 국가고, 네 번째는 버뮤다 군도 같이 소득세와 법인세 등 과세가 전혀 없는 국가가 있다.”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탈세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우선 조세피난처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고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회사를 세운다. 이렇게 설립된 회사를 ‘페이퍼컴퍼니’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서류로만 있는 회사라는 뜻이다. 그 후 조세피난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에 허위로 투자한다. 실질적으론 투자하지 않으면서 투자금 명목으로 페이퍼컴퍼니에 유입된 자금을 쌓아두는 거다. 페이퍼컴퍼니로 빼돌린 돈에 대해선 조세피난처의 세율을 적용받는데 이 세율이 한국에 비해 현저히 낮거나 없으니 이런 방식으로 한국에 내야 할 세금을 탈루한다. 이걸 ‘역외탈세’라고 한다.”


-국제 거래를 통한 탈세를 역외탈세라고 말하는 건가.
“그렇다. 역외탈세는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한국에서 번 소득을 외국으로 빼돌려 소득을 속이고 탈세하는 경우와 외국에서 번 소득을 한국으로 들여오지 않고 제3국인 조세피난처로 보내 탈세하는 경우다. 한국 국민이나 법인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에 대해서도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 외국에서 번 돈을 한국으로 들여오지도 않고 신고도 하지 않으면 국세청이 그 자금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 점을 이용해 소득신고를 하지 않고 탈세하는 것이다.”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금지할 수 없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탈세가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업상 페이퍼컴퍼니의 설립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페이퍼컴퍼니의 설립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페이퍼컴퍼니 중에서도 합법인 경우가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페이퍼컴퍼니 자체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외국환거래법상 신고의무와 납세의무 등을 준수할 경우 합법적인 페이퍼컴퍼니의 설립, 운영이 가능하다. 즉 신고를 했고 정당한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야 할 정당한 목적은 뭔가.
“기업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이유는 절세와 자금 융통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조세피난처가 아닌 외국 은행에 자금을 넣어두면 과세부담이 크고 운용하기도 불편하다. 이럴 땐 제3국인 조세피난처 국가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외국 법인에서 얻은 수익을 모으면 합법적으로 세금을 적게 낼 수가 있는 거다.”


-탈세와 절세는 어떤 점이 다른가.
“탈세는 내야 할 세금을 안내는 것이고 절세는 이중과세를 피하거나 합법의 선에서 과세를 줄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기업은 법정유보소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과세를 피하는 것이 용인된다. 법정유보소득은 배당하진 않지만 법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자금을 말하는데 이 돈을 한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것보다 조세피난처에 보유하고 있을 때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다.”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기업의 85%가 선박회사인 것으로 드러났는데 유독 선박회사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이유가 있나.
“선박의 담보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선박 1척을 만드는데 1조 원 이상의 큰돈이 들기 때문에 발주비용을 금융기관에서 빌린다. 그런데 발주비용이 워낙 크다보니 선박회사가 비용을 갚지 못하게 될 때를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금융기관이 발주비용을 빌려준 대신 선박을 담보로 잡게 되는데 이때 사용되는 것이 페이퍼컴퍼니다. 선박을 페이퍼컴퍼니의 소유로 하면 선박회사가 위기에 처하더라도 금융기관은 선박을 안전하게 담보로 갖고 있을 수 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면 선박이 실제로 조세피난처 국가에 있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다. 이외에도 기업을 인수합병 할 때나 금융기업이 필요에 따라 합법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기도 한다.”


-페이퍼컴퍼니를 어떻게 운영할 때 불법으로 간주되나.
“페이퍼컴퍼니가 실제로 무역을 하는 것처럼 장부를 조작한 사례가 있다. 외국에서 얻은 소득을 전부 한국으로 가져오지 않고 일부는 페이퍼컴퍼니에 남겨놓았다. 소득을 은닉해 과세도 피하고 비자금도 만든 셈이다. 이런 경우가 적발되면 국세청은 페이퍼컴퍼니를 허위의 회사로, 탈루된 소득을 기업주의 소득으로 간주하여 소득세를 추징한다.”

 

 

 

 

 

 

 

 

 

-조세피난처는 어떤 이익을 얻는 건가.
“조세피난처 국가들은 자국에 자금이 많이 유입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세금을 적게 과세하거나 전혀 과세하지 않으면 외국에서 많은 자금이 국내로 유입되고 그 자금을 이용해 외국에 대출을 해주는 식으로 금융 산업을 육성한다. 이렇게 유입되는 자금이 조세피난처 국가들의 경제 산업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불법 자금이라고 해도 모른 척 해주는 거다.”


-불법 탈세의 여부는 어떻게 판단하나.
“합법과 불법의 기준은 신고를 했는지와 정상적으로 운영했는지다. 국세청에서 신고의무를 준수했는지 합법적으로 운영했는지 등을 확인하고 명단 공개자를 조사해서 실제로 탈루했는지를 검증하는 거다. 탈세 자금이라고 확인되면 과세를 한다. 역외탈세도 지하경제의 일부이기 때문에 역외탈세를 방지하는 것은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역외탈세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가 있나.
“2010년부터 해외금융계좌신고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개인과 법인이 해외금융계좌에 보유한 자금을 자발적으로 신고하도록 명시한 제도다. 현재 미신고 금액이 50억 원이 넘으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 이하의 벌금을 매기고 있는데 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 해외유보소득과세제도라는 제도가 있다. 이는 페이퍼컴퍼니가 보유하고 있는 자금 중 법정유보소득 외의 자금에 대해 과세하는 제도다. 법정유보소득 외의 자금은 탈세 자금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탈세를 감시하는 제도도 필요하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국가 간 조세정보 교환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탈세 혐의가 있는 대상의 계좌 정보를 조세피난처 국가에서 제공받는 것이다. 현재 정보 교환이 가능한 국가는 89개국이다. 조세피난처 국가를 대상으로 조세정보교환협정을 체결하는 등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


-조세피난처와 정보교환협정을 맺는 것이 쉬울 것 같진 않은데.
“조세피난처에 강제로 계좌 정보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주권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적 공조를 요청해야 한다. 조세피난처 국가 중 몇 개의 국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와는 정보 교환이 되고 있다. 계좌 정보를 비밀로 하고 보호하는 게 조세피난처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모든 정보를 교환하자고 요구할 수는 없고 혐의가 있는 자국민 리스트를 먼저 제시하고 이에 대한 계좌 정보에 대해서만 제공받는다.”


-명단을 구하는 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렇다. 이번의 경우처럼 언론이나 NGO단체가 명단을 공개하면 그 명단에 대해서 조세피난처에 정보를 요구할 수 있고, 외국에 파견된 국세청 조사관들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조사를 하기도 한다.”


-주로 어떤 경우를 조사대상으로 정하나.
“이중국적자가 탈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조사한다. 한국 국적과 조세피난처의 국적을 이중으로 갖고 있으면서 재산과 소득을 조세피난처에 신고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이중국적자임을 검증해서 실거주지가 어디인지, 주요 재산이 한국에 있는지 등을 파악해서 불법으로 판단한다. 혹은 이중국적을 가지면서 두 나라 모두에 세금을 안내고 제3국에서 자금을 운용하는 경우가 있다. 소득이 발생하면 국적을 소유한 두 나라에 전부 신고하지 않고 탈세한다. 이게 적발되면 양국의 국세청이 이 사람의 국적을 합의하고 탈세된 금액을 추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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