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자와 적자
  • 중대신문
  • 승인 2013.05.27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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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달 17일은 김동리 선생님 18주기다. 8년전 10주기부터 관광버스를 대절해 성남 묘소참배를 한해도 거르지 않고 진행시켜 왔다. 올해는 탄생 100주년이기로 해서, 더 많은 참배 지원자가 신청해 올 예정이다.


  비단 묘소 참배뿐 아니다. 지난 17일 김동리 탄생 100주년 기념 하동 ‘역마’ 문학축제를 성황리에 끝마쳤고, 다음달 19일부터 무역센터에서 열리는 서울 국제 도서전에 김동리 특별 추모전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10월 초 부산‘밀다원시대’ 문학축제, ‘무녀도’ 뮤지컬 전국순회공연, 김동리 문학선집 33권 완간 출판 기념회, 김동리 서예전, 김동리 문학 재조명 심포지엄, 김동리 음악회 등 계획 중인 행사를 일일이 다 열거하기에도 벅차다.


  그 모든 행사의 기획을 내가 담당하고 있어서 요즘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편이다. 솔직히 지난 8년간 나는 김동리 선생 사업에 전력투구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고, 김동리가 우선이고, 그다음이 내 개인 일정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서자 출신 주제에 무슨 꿍꿍이를 노리고 저처럼 열심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우도 솔직히 없지 않았다. 내가 문예창작과가 아닌 회화과를 다녔기 때문이다.


  그렇기로서니, ‘적자’가 아닌 ‘서자’로 낙인찍고, ‘저토록 죽을 둥 살 둥 올인하는 것에는 뭔가 저의가 있음이 틀림없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시각에 대해 나로서도 할 말이 많다.


  1966년 신춘문예에서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선생님은 심사위원이었고, 나는 응모자였다. 물론 선생님은 나를 몰랐다. 한데 입선이었다. 그것도 공교롭게 2개 신문이었다. 선생님도 입선이 아쉽다하여 그 중 한곳을 취소하고 대신 현대문학에 추천을 해주시고, 이름도 ‘수남’에서 ‘시종’으로 바꿔주셨다. 그리고 그해 여름 써 가지고 간 3편을 읽어보시고 나서, 우리 집 어렵다는 얘기를 들으셨는지, “잡지 추천 원고료는 적지만, 신춘문예 상금은 많다”며 일단 신문 쪽으로 투고해보고, 안되는 경우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 이듬해 나는 동아일보,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하는 행운을 얻었다. 선생님이 심사를 맡는 곳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정식작가가 되었다. 그러니까, 추천에다, 신춘문예 입선에다, 당선까지 선생님이 제자에게 베풀 수 있는 은총을 두루두루 누린 셈이다.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지 못했다는 사실 한 가지만 제외하면, 나처럼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케이스도 흔치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야 옳다. 고로 나는 ‘서자’가 아닌 당당한 ‘적자’인 것이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그림도 아니고, 글도 아닌 참으로 얼치기에 지나지 않던 나를 소설로 밥 먹게 훈련시켜준 선생님께 과연 무엇으로 어떻게 다 보답해 드릴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앞으로도 여력이 남아 있는 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김동리 문학을 후대에 알리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작정이다.

백시종 소설가 (회화과 65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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