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히로시마에서 핵폭탄이 터졌을 때, 런던에선 ‘진저’와 ‘로사’라는 두 명의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그 둘은 마치 샴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는 가까운 사이가 된다. 하지만 영원한 우정을 약속했던 두 소녀는 1962년,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진저에겐 핵전쟁반대운동이, 로사에겐 사랑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진저는 정치 참여의 길을 걷게 되고 로사는 자유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다.


  지난 24일 개막한 ‘제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인 <진저&로사>의 줄거리다. 대표적 페미니즘 영화

 
감독인 샐리 포터가 연출한 이 영화는 정치와 사랑을 여성의 시각에서 보여준다. 영화는 신좌파운동과 페미니즘운동이 폭발적으로 발생하기 직전을 배경으로 한다. 진저의 아버지와 로사의 불륜관계로 진저의 가족은 해체된다. 그러나 이로 인한 개인적 상처를 딛고 페미니스트로 성장하는 진저, 자유로운 성생활과 사랑을 추구하는 로사의 모습은 변화하는 여성의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는 평화를 갈망하는 페미니스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현실 속 페미니스트의 모습은 오해로 얼룩진 측면이 적지 않다. 가장 흔한 오해는 페미니즘이 반(反)남성주의라는 것이다. 초기 페미니즘엔 남성에 대한 반감이 있었지만 현대의 페미니즘에선 생물학적 성보단 성차별에 대한 투쟁에 초점을 맞춘다. 여성도 성차별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대표적 여성해방운동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저서 『제2의 성』에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보부아르가 말하는 ‘여자’는 생물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개념이다. 영화 속 진저는 사회적으로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여겨지는 미성년이자 여성이었지만 미국과 쿠바의 핵전쟁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다. 통념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졌던 제약과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진저는 사회적으로 주어진 여성성을 벗어났지만 페미니즘 속에서 여성성에 대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생태학과 페미니즘이 결합된 에코 페미니즘과 자유주의 페미니즘 등은 여성성의 존중을 기반으로 한다. 반면 급진적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것부터 차별의 시작이라며 성의 계급화를 타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대해 인권센터 이은심 전문연구원은 “여성성을 무시하는 것도, 여성성을 인정하는 것도 여성해방의 해결책이 아니다”고 말했다. 여성성을 무시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기본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고, 여성성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적인 여성의 특징을 모든 여성의 특성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는 맹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여자라고해서 모두 같은 특성을 갖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어떤 경우엔 남자와 여자가 비슷한 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페미니즘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의 전환을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산다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진저는 자신의 시에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다고 썼다. 진저의 삶도 로사의 삶도 ‘살아가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저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가 미안하다고 말하자 진저는 답한다. “그래도 용서한다”고.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제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28개국에서 온 장편영화 43편과 단편영화 67편의 출품작을 상영하고 있으며 메가박스 신촌에서 오는 30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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