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기자할 거 아니거든.”, “분위기 띄운다고 노래시키지마.” 한때 인터넷상에서 큰 인기를 끈 ‘학과별 오해’ 시리즈 중 일부다. 위 예시는 신문방송학과와 실용음악과 학생에 대한 것이다. 물론 영어영문학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도 자막 없이 미드 못 봐.” 영문과 학생의 대답이다. 영문과 학생이라고 전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영어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영어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원어연극학회인 ‘글로브’다. 1960년 학회가 만들어진 이후, 반세기동안 꾸준한 활동으로 영문과의 상징이 된 글로브. 올해로 서른 두 번째 공연을 준비 중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지난해 9월, <피그말리온> 공연 리허설을 하고 있는 글로브.

  학회 이름인 글로브는 영국의 유명 극장인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에서 따왔다. 영국 극작문화의 상징인 글로브 극장처럼 학회 글로브도 많은 관객들이 찾는 흥하는 연극을 선보이고자 하는 마음에 학회명을 지었다고 한다.


  많은 연극 동아리들은 외국 작품을 공연할 때면 번역극 형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글로브는 영문과 소속 학회답게 오직 원어로 된 연극만을 고수한다. 영문과 학생들의 자존심일까? 글로브 오윤재 회장(영어영문학과 2)은 “원어로 된 극은 작가가 쓴 원문을 그대로 살릴 수 있어 번역극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며 원어연극엔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고 설명한다.


  글로브는 매년 9월 정기공연을 실시한다. 이를 위해 방학 때면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간다.  물론 연습은 녹록치 않다. 아무리 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고 해도 막대한 양의 영어 대사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발음이다. 연극에서 발음은 대사를 관객들에게 정확히 전달해, 극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글로브에 소속된 학생들은 대부분 ‘토종발음’을 자랑하는 한국인. 영문과 학생에게도 혀를 잔뜩 굴리며 발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어의 발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장의 강세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억양과 악센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렵지만 그렇다고 대충 할 수도 없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관객들이 연극 내용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관객석으로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외국 학생들이 공연한 연극을 보며 발음을 익히고,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친구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발음을 교정하는 등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공연 중 벌어진 에피소드도 많다. “대사를 잊어버려서 똑같은 문장을 한 번 더 말하는 실수를 했는데 아무도 눈치를 못채더라고요. 틀려도 티가 많이 안나요”라며 한 학생이 능청스레 지난 무대에서의 실수를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임기응변만 있다면 실수도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  


  지금 글로브는 32번째 연극인 ‘비소와 낡은 레이스’의 본격적인 연습을 앞두고 사전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작품분석은 물론, 대본리딩까지 쉴 틈이 없다. 약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정기공연과 커튼콜을 기대하며, 오늘도 그들은 토종 발음에 버터를 바르고 있다. 연극을 마치고 박수갈채 속에서 “Thank you!”라는 말과 함께 환하게 손을 흔들 그들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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