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에서 강의를 한 지 어언 10년이 넘어간다. 간호사 국가시험 중 보건의료관계법규 만점자들과 학교병원 지하의 일식집에서 모임을 갖게 됐다.
 

  4학년이다 보니 자연스레 미래의 꿈에 대해 대화를 하게 됐고, 한 친구가 “교수님께서는 꿈이 무엇이에요?”라고 나에게 물었다.
 

  나의 꿈! 어릴 적 나의 기억 한편에는 항상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친구들을 모아놓고, 칠판 대용의 나무판자를 세워 놓고 뭐라고 떠들어 대면 아이들이 웃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울기도 했던 그 모습. 같은 친구들인데도 불구하고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던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그 시간을 위해 책도 많이 읽었고, 내 스스로 밤새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 친구들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고 싶어서, 아마도 친구들의 이러한 모습이 나에게 하나의 자극이 됐을지도 모른다. 이후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학생이라기보다는 과외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더 많이 듣게 됐고, 이러한 상황을 즐겼던 생각이 든다.
 

  고2 때 늦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많은 방황을 하게 됐고,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간호과에 오게 됐다. 모든 대학생활이 그렇겠지만 멋과 낭만 대신에 학점에 얽매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팍팍한 4년을 지내고 간호직 공무원이 9급부터 시작하던 그 시절, 운 좋게도 특채시험에 합격해 7급으로 시작을 하게 됐다. 학교를 갓 졸업한 친구에게 7급이라는 무거운 짐으로 인한 직장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 간호과장의 미움의 표현은 나를 움츠리게 만들었고, 이런 나의 움츠림은 더욱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 10년이라는 공무원 생활은 나에게 커다란 정신적 타격을 주게 됐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약이 없이는 하루도 버티지 못할 때쯤 병원을 그만두기로 결심했고 도망치듯 사표를 썼다. 이러한 패배감은 오히려 나에게 동기를 부여하게 됐고, 그렇게 어렵다는 임용고시에 당당히 합격해 초등학교의 보건교사가 됐다. 이곳에서 그동안 잊어버렸던 가르침의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되었고, 수업시간에 어린 학생들의 반짝이는 어린 시절 그 모습을 다시 보게 됐다. 병원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하면 어린 학생들은 놀라워하면서 탄성을 지른다. 내가 너무나도 듣고 싶어 하던 소리. 내가 그렇게 즐겨했던 그 모습들.
 

  보건교사 생활의 보건교육은 나의 즐거움을 다시 찾게 하는 계기가 됐고, 용기를 내 졸업한 지 15년 만에 다시 모교인 중앙대 교수님을 찾아뵀다. 무작정 교수님께 다시 공부하고 싶다고 떼를 썼고, 교수님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석사와 박사과정을 밟게 됐다. 그리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대학 강의를 하게 됐고, 요즘은 많은 후배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후배들이 나의 강의에 빠질 때, 나는 희열을 느낀다.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진정 행복을 느낀다고.

김희영 강사 간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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