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종종 개인에게 ‘멀티 플레이어’가 되기를 요구한다. 짧은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것은 ‘효율’이라는 것과 맞닿아 있다. 2명이 할 일을 1명이 하게 되면, 또 다른 1명을 ‘사용’하기 위한 비용은 줄어들 수 있으니까.
 
  중대신문이 효율을 위해 사진기자를 ‘사용’하지 않았을 리 없다. 어쩌면 사진학과 재학생의 지원이 부족했을 것이고, 사진에 관심이 있는 재학생이 신문에는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다. 2명의 기자 이름 대신 글·사진 아무개 기자라는 외로운 바이라인이 많은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 어쩔 수 없다. 글도 잘 쓰고 사진도 잘 찍는 멀티 플레이어를 주문할 수밖에(이것은 절대 효율이 아님을 강조하며).
 
  왜 중대신문의 사진은 화각이 모두 같은가. 혹시 렌즈가 하나밖에 없는 것인지. 초점이 안 맞고 노출이 부족한 사진을 보면 스트로보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선배는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국방일보도 아닌데 파이팅과 악수가 난무하며, 인터뷰 사진과 행사 사진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얼굴 없는 뒤통수 사진은 또 왜 이리 많은지. 
 
  기사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글들도 눈에 띈다. ‘많은’, ‘각종’, ‘다양한’ 등의 불명확한 수치와 ‘한 교수님’ 등 팩트 없이 두루뭉술 넘어간 표현들이 바로 그렇다. 취재의 미비일 수 있고 기사 쓰기 훈련의 부족일 수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그런 문장들이 기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사실이다.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겠다고 당장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이것’만큼은 잘하겠다고 마음먹을 때 또 노력했을 때, 곧이어 ‘저것’도 잘하고 싶은 욕심과 능력이 생기게 되는 건 아닐까 싶다. 
 
  기획서도 잘 만들고 PT도 잘해야 한다는 직장 선배의 조언이 생각난다. 당장 부담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최성우 동문 (신문방송학과 00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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