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부터 ‘주식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다. 증권 전반에 대해 눈높이를 낮춰 알려준다는 것이 기획의도다. 한글교육으로 비유하자면 자음과 모음부터 알려주는 셈이다. 주로 정보에 목마른 중장년층 어르신들이 많이 찾으신다. 딱딱한 사각의자에 노트하나 펴면 다인 한 자 조금 더 되는 책상뿐이라 볼멘소리도 할 만한데 그 분들의 눈빛은 되레 아이처럼 생기가 넘친다. 강사의 말을 한 톨이라도 놓칠세라 볼펜을 쥔 손은 분주하기만 하다. 강의 중간에 질문을 던져도 여유롭게 받아치고 강의 후엔 강사님과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어떤 분은 강의 자료의 오류를 지적해 모두에게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들이 뭉클해 나의 이목은 PD건만 강단보다 청중에 더 집중되기도 한다. 정말 배움이란 끝이 없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매주 텍스트가 아닌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주식시장에서 개미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 많다. 이유는 힘이 없어서다. 하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현혹되어 비판 없이 따라가지 않고 조목조목 기업을 살펴본다면 그래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남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려 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판단해서 선택하려는 그분들의 생각이 그래서 참 반갑다. 세월이라는 굴곡 사이로 싹튼 통찰력을 바탕으로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면 그분들의 투자가 마냥 어둡지만은 않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대박의 소식이 풍문으로 떠도는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차곡차곡 내실을 다져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나의 자화상이 부끄럽게 스러진다.
 
  어쩌면 난 너무 나의 기준으로만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너무 쉽게 힘들다는 말을 내뱉었고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늦었다는 말을 꺼냈다. 못해본 게 아쉽다는 그 어떤 일도, 후회된다는 그 어떤 한탄도 그분들 앞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요 사치이리라. 늦었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느끼고 당장 이익을 거두기 위해 달려들기보다 기초부터 탄탄히 시작하는 어르신들의 태도에서 이제 배우려 한다. 그래서 ‘벌써’라는 수식어로 나이를 돌아보던 습관부터 고치기로 했다 그래 난 이제 ‘겨우’ 서른하나다. 하지 못한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시간. 인생은 일렬로 배열된 마차 램프가 아니기에 무엇을 하더라도 늦음은 없다. 그분들은 행동으로 내게 그런 가르침을 주셨다.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었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한 김훈의 말처럼 도저히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시나브로 곁에 왔다. 예부터 춘분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1년 중 농사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 했다. 이 시기 한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학우들에게 이 깨달음을 꼭 전해주고 싶다. 늦었다는 말은 가장 마지막에 꺼내야 할 핑계다. 모두가 늦었다고 할지라도 일단 시작하고 보는 누군가처럼 찬찬히 내일을 준비하는 청춘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회학과 02학번
이무제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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