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복지학과’라는 학과 이름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선후배, 사제관계마저도 한 지붕 아래 사는 형과 동생, 아빠와 딸 같은 정을 나누게 되는 곳이라는 것을. 가족복지학과 동아리 ‘MINE’은 그들이 나누는 따뜻한 정을 외부인들에게도 전하려 한다. 그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겐 사랑 넘치는 수호천사다.  

    MINE은 2005년에 만들어졌다. 가족과 가정에 관련된 봉사를 하고자 했던 몇몇의 멤버들이 모인 것이다. “처음에는 매우 적은 인원으로 운영됐어요. 하지만 입소문이 나고 점차 많은 학생의 관심을 받게 됐죠. 결국엔 각 학년마다 과반수의 학생이 합류할 정도로 커졌어요.” 동아리의 놀라운 성장 과정을 쭉 지켜본 이민선(3) 부회장이 설명했다.
  
  사실 봉사동아리가 이렇게까지 흥행할 줄은 몰랐다. 동아리 초기 멤버들조차 신입생 시절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봉사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들어오진 않았어요. 주변 친구들이 MINE, MINE, 하기에 그냥 좇아왔거든요.” 그러나 특별한 목표도, 목적도 없던 그들에게 ‘꾸준함’은 새로운 시선을 가져다줬다. 봉사 과정에서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정’을 느끼게 되며 봉사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낯선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매우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그리고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하니 전엔 느끼지 못했던 멤버들 간의 끈끈한 동지애가 싹트기 시작했다. 늘 서로에 대한 격려가 넘쳤기에 MINE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봉사하러 간 복지센터에서 멤버들은 서로 고된 일을 하겠다며 나섰고, 봉사정신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감동적인 모습을 서로에게 선사했다. 이런 훈훈한 장면은 멤버들의 열정을 갈수록 드높여주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즐겁고 수월하기만 할 수는 없는 법, 어린 아이들을 대할 일이 많다보니 당혹스런 순간이 갑작스레 찾아오곤 했다. 막무가내인 몇몇 아이들을 달래는 일은 매우 어려웠고 이는 봉사를 버겁게 느끼게끔 했다. 수업시간에 배운 이론들을 적용시키기엔 변수가 많은 일들이 끊임없이 닥쳐왔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재정적인 문제까지 맞닥뜨렸을 땐 멤버들에게 굉장히 미안해졌다. “봉사가 끝나면 멤버들에게 밥이라도 사주고 싶죠. 하지만 회식 때마다 개인 돈을 걷어서 충당했어요. 학교에서 소액의 지원을 받는데 활동을 하다보면 늘 부족할 수밖에 없거든요.” 종종 선배들과 교수님이 도와주기도 하지만 멤버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학과 구조조정으로 인한 혼란이었다. “가족복지학과가 2011년부터 사회복지학부로 들어가게 됐어요. 그 해 신입생들은 2학년이 되서 과를 자유롭게 선택했는데, 문제는 가족복지학과를 많이들 선택하지 않았다는 거죠.” 2011년에는 1명이, 2012년에는 6명이 택했을 뿐이었다. 급감한 학과 신입생 수에 의해 MINE의 앞날이 캄캄하게만 느껴졌다. 졸업생 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고 그 자리를 메꿀 신입생은 없었기 때문이다. 
   
   위기를 맞고 있는 MINE이지만 봉사에 대한 마음과 동아리에 대한 애정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 멤버들은 전했다. 그들의 따뜻한 손길이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다. 군 휴가를 맞이한 멤버가 가장 먼저 찾는 곳이 MINE 봉사활동일 정도로 그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봉사가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MINE은 변함없이 그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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