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다니냐
 2013 중앙대 식생활 보고서

글 싣는 순서

① 밥 굶는 학생 23명의 이야기
②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가-중앙인의 식사패턴을 분석하다
③ 중앙대생 2명의 식단을 파헤치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여유롭지 않은 생활에 밥 한 끼 여유롭게 먹을 수 없다

끼니를 거르자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 끼니를 거르는 횟수가 잦은 한 자취생의 텅 빈 냉장고.

 

▲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학생이 적지 않다.

▲ 도서관 열람실 책상 한쪽에 자리한 음식들.
  

▲ 다이어트를 하는 한 학생이 친구와의 저녁약속에서 샐러드를 꺼내 먹고 있다.

▲ 서울캠 중앙도서관 편의점 간이테이블에서 삼각김밥과 우유로 허기를 달래고 있는 학생들.

 

 

  ‘밥은 먹고 다니냐’의 첫 기획으로 배곯는 대학생들의 식생활을 관찰해봤다. 밥을 거르는 일이 ‘유난스럽지’ 않는 대학생들의 하루는 대체 어떤지, 심층기획부는 23명의 대학생을 만났다. 대학생이 밥을 챙겨 먹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느라, 퓨처하우스에 살아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취업준비 때문에…. 여기저기 치이는 대학생들의 일상에서 식사는 어느새 뒤로 밀려나 있었다.


밥 대신 커피…바쁜 생활에 영양은 뒷전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는 아침은 언제나 커피보다 쓰다. 여느 때처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기운 없는 몸을 이끌고 커피메이커에서 원두커피를 내린다. 대외활동, 팀플 그리고 개인 과제의 마감기한이 한꺼번에 겹쳐, 해결하느라 한숨도 못 잤다. 얼마 전 자취방에 장만한 커피메이커는 피곤한 생활 탓에 입맛도 없고 밥해 먹기도 귀찮은 이수진씨(가명)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다.


  “너무 바쁘게 사는 너에 비하면 내가 바쁜 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친구들은 치열한 생활을 반복하는 수진씨를 보며 혀를 내두른다. 현재 수진씨는 복수전공, 4개의 대외활동, 어학공부, 자격증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서포터즈 활동을 하는 수진씨는 매주 블로그에 포토샵 작업을 거친 사진과 글은 물론 직접 제작한 영상까지 올리고 있다. 이렇게 블로그에 포스팅 하는데 쏟아야 하는 시간은 결코 적지 않다. 대외활동뿐만 아니라 영어공부 역시 소홀히 할 수 없기에 매일 틈나는 대로 토익 공부를 하고 있다. 거기에 각종 과제와 공부를 모두 소화하려면 친구들과의 약속도, 식사도 챙길 여유가 없다. 그야말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3학년이 되니까 학점관리만 하고 살 순 없겠더라고요. 여러 가지 활동을 한꺼번에 하다 보니 공부할 시간을 내기도 벅차서 밥은 잘 안 먹고 다녀요.” 바쁜 수진씨의 주식은 커피와 빵이다. 아침에 이어 점심마저 커피로 때우는 수진씨는 이미 커피에 중독됐다.


  오랜만에 남자친구와 함께하는 저녁 시간. 메뉴는 특히 좋아하는 돈까스다. 맛있게 먹었지만 이내 위에서 잘 받지 못하는지 속이 쓰리기 시작한다. 수진씨는 “사실 친구들이나 남자친구랑 식사 약속이라도 하지 않으면 여유롭게 식사할 기회도 없어요. 평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았더니 오히려 정식으로 무언가를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바쁜 생활로 인해 제대로 된 식사를 포기하는 경우는 수진씨뿐만이 아니다. 박동현씨(가명)는 시간표를 따라 사는 것만으로도 끼니를 ‘때우기’가 벅차다. 점심시간에도 수업을 들어야 하고, 공강 시간은 촉박하기만 하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연속으로 강의를 듣는 날엔 아침은커녕 점심도 제때 먹지 못한다. 동현씨는 “끼니는 거의 빵이나 패스트푸드로 해결해요. 저녁엔 약속이 잡혀봤자 술 약속인데 그럴 땐 그냥 술안주를 식사로 삼는 편이에요”라고 말했다.


텅 빈 주머니, 선택권은 없다
  ‘치즈를 넣을까 말까?’ 메뉴판에 적혀 있는 ‘치즈 추가 +500’을 바라보며 머릿속 셈을 시작한다. 치즈를 추가하면 2,500원이었던 컵밥은 어느새 3,000원이 된다. 누군가에겐 고작 500원이지만 이준수씨(가명)에게 2,500원과 3,000원은 명백히 다르기에 섣불리 치즈 추가를 할 수가 없다. 


  노량진의 별미인 컵밥은 기본메뉴 2,5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자랑한다. 철판 삼겹, 참치김치볶음, 훈제오리 등 다양한 메뉴들이 있지만 준수씨의 선택은 늘 ‘기본메뉴’다. 만만한 컵밥이라지만 ‘스페셜’, ‘특메뉴’라는 이름들이 붙으면 가격이 4,500원 정도로 훌쩍 뛰기 때문이다.


  “가장 저렴하고 가장 양 많은 음식이 컵밥이에요. 게다가 맛까지 있으니까요.” 준수씨가 컵밥마니아가 된 것은 그의 주머니 사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남들보다 다소 적은 용돈을 받는 준수씨가 외식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은 한정되어 있다. 남들이 즐겨 먹는 피자, 까르보나라 등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음식들의 가격은 준수씨가 생각하는 ‘적당한 가격대’를 훌쩍 넘겨버린다. 학교 앞 음식점들은 대부분 한 끼 식사에 5,000원을 웃도는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에 부득이하게 학교에서 식사해야 할 때는 되도록 학생식당으로 향한다.


  복수전공을 시작한 후로는 친구들과 시간표가 겹치지 않아 혼자 밥을 먹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배가 고플 때엔 집에서 싸온 도시락이나 등굣길에 사온 컵밥을 꺼내 먹는다. 때로는 정신없는 등굣길에 도시락도, 컵밥도 챙겨오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엔 점심시간을 틈타 홀로 노량진으로 향한다. 청룡연못 앞에서 무료로 탈 수 있는 스쿨버스는 준수씨의 든든한 동반자다. 2,500원짜리 컵밥을 사러 노량진으로 향하는 데 1,000원 남짓한 돈을 교통비로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아 쌀쌀한 이른 아침. 노량진엔 아침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고시생들로 붐빈다. 오늘도 준수씨는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고 길게 늘어선 백팩과 츄리닝 바지들 사이로 합류한다.

오늘도 저녁은 중국 배달요리
  오늘은, 짜장면이다. 얼굴이 익숙한 배달부가 짜장면 한 그릇과 쿠폰 한 장을 내려놓고 꾸벅 인사를 한다. 사무실 냉장고엔 포도송이 스티커로 빽빽한 중국집 쿠폰이 나붙어있다. 윤기가 자르르한 면발을 마주하니 벌써 속이 더부룩한 것 같다. 아무래도 짬뽕을 시키는 편이 나았겠다는 짧은 후회도 잠시, 조민호씨(가명)는 얼른 나무젓가락을 쪼갠다.


  민호씨는 벌써 몇 달째 배달된 중국요리로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오후 7시부터 새벽 6시까지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을 돕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알바생에게 허용된 식사시간은 또 어찌나 짧은지. 기름기 가득한 중국요리를 후다닥 해치우고 나면, 다음 날 아침까지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안 먹느니만 못한 식사로 민호씨의 식습관은 엉망이 됐다.


  아르바이트로 새벽을 꼬박 새우는 생활 패턴 탓에 하루에 두 끼를 배달해 먹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엔 메뉴를 바꿔 먹는다. 임시방편인 셈이다. 이쯤 되면 중국요리가 지긋지긋할 법도 한데, 민호씨는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짓는다. 야심한 밤이나 시퍼런 새벽에 불빛을 밝히고 서 있는 음식점은 중국집뿐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와도 제대로 식사를 챙겨 먹는 일은 드물다. 점심은 시간표나 팀플에 쫓겨 샌드위치나 삼각김밥 따위를 허겁지겁 먹는 게 전부다. 민호씨가 유일하게 챙기는 식사는, 학교에 오기 전 먹는 ‘집밥’ 한 끼가 전부다. 뒤틀린 식습관에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얼마 전 받은 건강검진에서는 ‘위장이 약하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하루 몇 시간씩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에게 밥 세 끼를 챙겨 먹는 일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알바생들이 제때 밥 먹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다들 그러지 않나요?” 민호씨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마치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점심과 저녁 중 뭘 거를까, ‘다이어터’의 애환
  “이거 진~짜 맛있어. 한번 먹어봐!” 유쾌하지만은 않은 저녁 시간. 아니나다를까, 혼자 샐러드를 먹고 있는 김소희씨(가명)를 향한 친구들의 유혹이 시작된다. 빠네, 까르보나라, 고르곤졸라 사이로 풀밭 같은 샐러드가 처량하다. 소희씨는 원치 않는 외식을 할 땐 채식만 골라 먹는다. 친구들의 유혹에 굴할 순 없는 소희씨는 여느 때처럼 눈과 귀를 닫는다. 하지만 코까지 닫을 순 없으므로 끊임없는 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딱 한입만 먹어볼까?’


  소희씨가 외롭게 채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2주째 해오고 있는 다이어트 때문이다. 작년보다 6kg이나 증가해서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바꿔 장기적으로 10kg을 빼는 게 목표다. 중대한 목표가 생기자 외식은 물론 엘리베이터도 사치가 됐다.


  수업 중 쉬는 시간, 적게 먹은 점심 때문에 주린 배를 부여잡고 있는 소희씨의 코에 미묘한 향기가 감지된다. 그새 친구가 편의점에서 군것질거리를 사온 것이다. “저리 가서 먹어.” 굶주린 배도 음식 냄새도 이럴 땐 모른 척하는 게 상책. 얄미운 친구는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마음 독하게 먹은 소희씨다. 


  소희씨의 철칙은 평소 아침과 점심을 적게 먹고 저녁엔 과일을 먹거나 우유나 두유를 마시는 것이다. 이를 지키기 위해 저녁 약속도 최대한 잡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저녁 약속이 생기면 점심을 걸러 균형을 조절해야 한다. “충동적으로 한번 음식을 먹고 나면 결국 스트레스가 심해질 정도로 후회하게 돼요. 힘들어도 배고픈 건 참아야 해요.” 배가 고파도 편의점에 가는 건 금물이다. 초콜릿 하나 허용할 수 없다. 오늘도 소희씨는 배고픔을 외면한 채 저녁 식사 대용으로 두유를 집어 든다.

 

퓨처하우스생은 ‘강제 다이어트’ 중

  아침 8시. 요란한 알람 소리에 나현씨의 잠이 저절로 깬다. 다행히 잠귀 어둔 룸메이트는 곤히 잠들어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1교시 수업 날엔 캠퍼스에서 5분 거리인 퓨처하우스마저 소용이 없다.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다 보면 오늘도, 아침 식사는 뒷전이다. 어제 저녁을 빵 하나로 때운 안나현씨(가명)의 배가 어느새 홀쭉하다. 냉장고에 미처 넣어두지 못한 두유는 책상 한구석에 탑처럼 쌓여있다. 밥을 걸러 골골대는 나현씨를 위해 손이 크신 아버지가 보내온 것이다. 나현씨의 룸메이트는 두유박스를 보고 실없이 웃었다. 전쟁통에 비축해놓은 ‘식량’ 같다면서.


 하나를 집었는데 맛이 밍밍하다. 날이 더워져서 상하기 전에 다 먹어치워야 하는데, 내심 걱정이 든다. 퓨처하우스 두 층당 딱 하나 놓여 있는 냉장고를 떠올리다가, 나현씨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퓨처하우스 냉장고는 음식을 넣어두면 하루 만에 뚝딱 사라진다는 ‘밑 빠진 독’이어서다. “룸메이트가 하루는 딸기를 넣어놨는데 다음날 보니 팩만 남아있었어요. 어떤 사람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보관해뒀더니 누군가 다 퍼먹은 흔적만 남았다고 하고요.” 나현씨의 하루는 미지근한 두유 한 팩과 함께 시작한다.


  오늘은 새내기와 점심 약속이 잡혀 있다. 오늘처럼 밖에서 끼니를 해결할 땐, 한 번에 몰아 먹는다. 긴긴 밤을 지새울 수 있을 만큼 많이 먹어야 한다. 퓨처하우스에 돌아가면 밥을 해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퓨처하우스 홈페이지엔 버젓이 표시돼 있는 매점도, 사실상 ‘폐점’이다. “퓨처하우스엔 가스레인지도 없어요. 취사도구 사용이 금지돼 있거든요.” 나현씨의 룸메이트는 전자레인지에 ‘3분 요리’를 데워서 끼니를 해결하지만, 나현씨는 그마저도 귀찮아 그저 굶는 게 전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퓨처하우스에 입관한 지 고작 한 달 새에 나현씨는 여러 번 몸살을 치렀다. “밥을 못 먹으니 ‘강제 다이어트’라도 되면 좋을 텐데…한번 먹을 때 폭식을 하게 되니까 살도 안 빠져요. 건강은 건강대로 상하고요.” 아마  오늘도 나현씨는 빵 몇 조각으로 저녁을 해결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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