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은 누구를 위해 열리나?
  • 김순영 기자
  • 승인 2013.04.0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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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적대는 강의실을 상상했다. 학생들이 너도나도 강연을 듣겠다며 모일 것이라 예상했다. 출석도 시험도 없는 학술 행사이지만 배움에 목말라 있는 학생들이 제 발로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순영아, 다녀와.” 한 학술 행사를 소재로 기사를 쓰라는 취재지시가 내려졌다. 강의실이 가득 찼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10여 명 남짓한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적어도 너무 적은, 강의실의 휑한 느낌에 조금은 어색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날 주제는 학부생이 듣기엔 다소 버거웠지만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내용이었다. ‘공짜’로 이런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강의가 끝나고 나니 참석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강연에 참석한 10여 명의 사람들 중 조교가 2명이었고 발제를 한 교수의 수강생이거나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세어보니 다른 이유 없이 순수하게 강의를 들으러 온 참가자는 소수에 불과해 보였다. 아쉬웠다. 일반 학생들이 학술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고, 남은 자리를 채우는 사람들의 존재가 불편했다.
그 이후에도 여러 학술 행사에 참석했다. 모두 다른 주제의 발

  표와 토론이 계속됐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학부생의 참여가 적다는 것이었다. 학생들로 북적거리던 강의실은 수업이 끝나면 볼 수 없었다.


  얼마 전 한 학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 학부생이었기 때문이다. 강연이 끝나고 취재차 학생들에게 강연을 어떻게 듣게 됐는지, 듣고 난 소감은 어떤지 등을 물었다. 학생들은 “이 강연도 출석체크 해서 점수에 반영돼요”라고 답했다. 강연은 학생들을 위해 열린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학생들은 빈자리를 채우기 수단이었다.


  물론 학부생들의 자발적 참여가 많은 학술 행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술 행사는 유용하지만 학부생들의 참여가 적다. 조건을 걸어 친분이 있는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으로 자리를 채운다는 것은 공공연한 이야기다. 학술 행사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강제로 자리에 앉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강제로 하는 공부는 빛바랜 공부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술 행사에 참여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학생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언제부터 학술과 학생은 멀어진 것인지, 학생 없는 학술 행사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김순영 시사학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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