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중대신문을 펼쳤다. 새삼스런 반가움이 인다. 학교가 다시 삶의 한 부분으로 들어온 느낌이랄까. 다시 회자되는 것들과 전혀 달라진 것들에서 불과 몇 년의 시간차를 곱씹게 된다. 중대신문의 꾸준한 성장도 반갑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있다. 1789호 <이 주의 시사>다. 3월을 기점으로 학술기획 코너는 관련 분야를 전공하신 교수님과의 문답 형식으로 포맷을 변경했다. 단순 기고에 지나지 않은 이전에 비해 성의가 있고, 내용 역시 쉬이 이해되게 배려한 흔적이 묻어난다. 다만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는 부분마저 교수님의 의견이 정론처럼 받아들여질 우려도 보인다.
 
  일례가 후세대의 연금부담 정당성 여부다. 연금논의 내에서도 가장 논란이 분분한 지점이다. ‘전(前)세대의 희생에 대한 후세대의 보은’이라는 윤리적 당위성을 앞세운 이유는, ‘후세대’ 당사자인 학우 입장에선 다소 논리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이견의 여지가 있다는 것. 분량상의 문제인지 그를 뒷받침하는 내용도 부실한 감이 없잖다. 이뿐 아니다. 이전 북핵분야 역시 학우들만의 또 다른 시선이 있었을 터다. 포맷은 바뀌었지만 내용은 일방향 지식전달의 구조를 답습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학우들과 전문가가 의견을 교류하며 논의의 깊이를 더해가는 쌍방향 소통형 학술 지면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더불어 지난해 상반기를 끝으로 문화기사가 자취를 감췄다. 중대신문 문화기사엔 심도 있지만 현학적이지 않고, 발랄하지만 방종치 않은 특유의 ‘중심’이 있었다. 학내 문제를 시시각각 다루며 현장감을 담는 것도 좋지만, 중량감 있는 기사로 독자의 ‘식탐(識貪)’을 채우는 공간이 외면당하진 않았으면 한다. 더욱 다양해질 중대신문을 기대한다.
김은혜 동문(신문방송학부 06학번)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