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가수다> 시즌 2와 <위대한 탄생> 시즌 3, 그리고 TV 드라마 <마의>가 종영되었다. 이 프로그램들은 각기 다른 포맷으로 시청자들을 유혹하였지만, 창작 욕망에 있어서는 기본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다. <나는 가수다>와 <위대한 탄생> 부류의 프로그램들은 일반인이나 전문가수를 가리지 않고 이들을 무한 경쟁 시스템에 몰아넣고 최후의 1인을 가려내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마의> 역시 이러한 경쟁 서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주인공에게 1주 단위로 제공되는 극한의 미션과 극복 서사, 이 반복적인 무한경쟁 내러티브는 이 드라마가 <나는 가수다>와 <위대한 탄생>, 그리고 <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 <슈퍼스타K>, <신입사원>, <짝>, <무한도전> 등 숱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드라마 버전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국가의 총체적인 보호 없이 온전히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성공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 시대 풍경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문강형준,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지그문트 바우만(Z. Bauman)은 21세기 사회에는, 우리의 길에 끝이 존재한다는 믿음, 역사적 변화에 획득 가능한 목적이 있고 미래의 어느 날 완벽한 상태, 살기 좋은 어떤 사회, 이루어질 것이라고 가정되던 것의 전부나 일부가 실현된,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올 것이라는 믿음의 환상이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사회를 소위 ‘액체근대(Liquid Modernity)’라 명명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가 세계 경영의 기본 강령이 된 이후, 국가나 제도가 국민을 보호하던 시대는 물러가고 개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무한 경쟁 체제로 돌입하게 된 것이 ‘액체근대’의 진면목이다. 거대담론이 무너지면서 역사와 사회의 총체성을 구상하던 시절이 지나가고, 개인의 생존만이 제일 명제가 되어버려 이른바 전면적인 서바이벌 사회에 진입한 듯하다.
 
  21세기 한국 사회는 이제 더 이상 규율사회의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로 넘쳐나는 사회이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운명을 책임져야만 하는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가 되어야 한다. 한병철의 『피로사회』에 의하면, 20세기가 안과 밖, 동지와 적, 나와 남 사이의 경계가 뚜렷한 면역학적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이질성과 타자성이 소멸되는 신경학적 시대이다. 이 새로운 시대에서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그는 이러한 시대에서 세계는 탈서사화될 뿐만 아니라 허무의 감정이 극대화됨으로써 삶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삶의 구체성은 “견고한 것들을 녹이는(melting the solids)” 무한 경쟁의 서바이벌 게임으로 소진되고 피로해진다. 
 
  이미 우리 시대에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은 보고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는 건강하게 꿈꾸는 자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시대가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낮에 “꿈꾸는 자는 어느 특정한 곳에 결코 머무르지 않는다. 거의 자발적으로 그는 방금 있었던 곳을 떠나 움직”(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의 원리1』)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낮에 꿈을 꾸는 자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사적 욕망만 취하려고만 하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진 않으려는 인간의 태도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이 후기근대의 광적인 질주를 막는 첫 번째 실천은 서바이벌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아닐까.
 
박명진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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