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댔다. 학교 본부에서 튀어나오는 말, 교수나 교직원 사이에서 떠도는 말, 학생들이 쏟아내는 말을 최대한 그러모아야 하는 기자 입장에서 말의 중요성은 항상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문장 몇 줄로 사람들 가슴에 기약 없는 빚을 남기는 실수도 종종 한다. 잘못 쏜 화살은 주워도 잘못 한 말은 못 줍는다고, 이미 천릿길을 가버린 말은 또 다른 말을 계속해서 만들어내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을 키운다.
 
  때때로 ‘바로잡습니다’꼭지를 통해 잘못 뱉은 말을 정정한다. ‘중대신문을 읽고’꼭지를 통해서는 틀어진 말의 방향을 체크한다. 남의 말 다 들으면 목에 칼 벗을 날 없다지만, 기사를 쓸 때만큼은 칼날을 앞에 두고 말을 점검한다. 의식 없이 사안만 좇는 말은 최대한 지양한다. 그러나 지난 호 신문의 ‘친절한 기자들’꼭지는 그동안의 노력을 한 번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월요일 1교시, 한 교수님이 기자를 호명했다. 교수님은 ‘친절한 기자들’꼭지의 주관적이고 편향된 몇몇 문장을 지적하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느냐고 물었다. 수많은 이유가 떠올랐지만, 뭐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기자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 마디뿐이었다. “제 담당 기사가 아닌데요.” 그렇게나 신경써왔던 말의 중요성이 단번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책임자를 잃은 기사가 공중을 떠돌기 시작했고, 미처 주워 담지 못한 말이 씨가 되어 무럭무럭 자라났다.
 
  학생들은 ‘슬금슬금’이나 ‘매너는 지켜주세요’ 같은 표현에 불쾌감을 표했다. 그리고 그를 포함한 몇몇 선정적인 문장에 대해 격앙된 어조로 대응했다. 넋 놓고 지켜보던 중대신문은 일이 커지고 나서야 제목을 수정하고 곳곳에 사과를 하러 다녔다. 그러나 말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엄청난 파급력으로 여기저기 계속해서 퍼졌다. 기자는 그때서야 말의 책임을 실감했다. 말이 잘못됐음을 지적받았을 때 “내 기사가 아닌데요”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알아보고 확인되는 대로 정정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했음을 알았다. 최대한 빨리 수습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방지했어야 했다.
 
  주변은 아직 시끄럽다. 남의 말 하기는 식은 죽 먹기라지만 비단 ‘남의 말’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말’, 아니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중대신문이 뱉은 ‘우리 말’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많은 지적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석 달 가는 칭찬 없고 삼년 가는 흉은 없다. 이번 일을 기회로 긴장의 끈을 더 단단히 잡으면 될 일이다. 비슷한 말도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꼈다.
 
  사람이 잠든 사이, 각 신체 기관들이 깨어나 자신이 더 중요한 존재라며 싸우던 우화가 생각난다. 눈, 코, 입, 팔, 다리 할 것 없이 싸웠지만, 승자는 아주 작아 보이지도 않던 혀였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결정적인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할 수 있다는 게 주 교훈이었다. 이 외에도 말에 관련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으면서 자랐다. 말에 관련한 속담도 마찬가지다. 매번 되새기지만 어느 순간 망각해버린 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는 한 주다. 나오는 말들을 골고루 새겨둬야겠다. 세 살 먹은 아이 말도 귀담아 들으랬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