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스위스 한림원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양철북’으로 유명한 독일작가 귄터 그라스를 선정했다. 이에 중대신문 학술부에서는 그에 작품세계를 인문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글을 싣는다. <편집자주>

지난 9월 30일 스웨덴 한림원은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Gunter Grass)를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고, 선정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의 대표작인 ‘양철북’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70년대 초 이미 문학적 역량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지난 30년간 거의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단골후보’였지만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번번이 불운을 맛보았던 그로서는 이번 수상이 때늦은 감이 없지 않겠지만, 한 세기를 마감하는 해에 지난 백년간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는 평가 속에 받는 노벨상인지라 그 의미는 그라스 개인으로 보나 독일문학계 전체로 보나 사뭇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 독자들에겐 작가 귄터 그라스나 소설 ‘양철북’이 그리 친숙한 이름은 아닌 것 같다. ‘양철북’은 소설보다는 영화로서 어느 정도 알려져 있을 뿐이며, 그라스의 다른 작품들도 이미 다수 번역되어 있긴 하지만 (‘고양이와 쥐’, ‘개들의 시절’, ‘국부마취를 당하고’, ‘텔크테에서의 만남’, ‘넙치’, ‘무당개구리 울음’ 등), 한국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지는 않는 형편이다. 높은 문학성에도 불구하고 헤르만 헤세나 토마스 만, 루이제 린저 등의 작품에 비해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 널리 수용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난해하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소설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독자들에게 그의 알레고리 소설들이 매우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라스의 작품세계에 접근하려면 우선 그의 독특한 서술원리, 특히 알레고리적 글쓰기를 이해해야 한다. 알레고리란 ‘다르게 비유적으로 말한다’는 어원에서 나온 말이지만, 메타퍼, 심볼, 직유 등 다른 전의적(轉義的) 술화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알레고리적 작품에서는 형상과 의미의 관계가 자의적(恣意的)이며, 서술맥락·서술구조에의 의존도가 높고, 텍스트를 세부까지 논리적으로 해석해낼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독자의 치밀한 성찰이 요구된다.

그라스 문학의 세계는 바로 알레고리의 세계이다. 형상(기표)은 의미(기의)와 관습적인 방식으로 자동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다양한 잠재의미로서 부유한다. 그라스의 언어는 관습화된 의미를 지니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이 개인적인 언어기호의 의미는 ‘전망적인 독서(perspektivistisches Lesen)’, 즉 서술맥락(콘텍스트)과 서술구조를 항시 함께 고려하는 분석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다. 그라스 자신이 “정밀함과 수집가적 근면성”이라고 말한 바 있는 창작방식 또한 그가 전형적인 알레고리 작가임을 보여준다. 그라스의 글쓰기는 직관이나 영감, 혹은 기발한 착상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지극히 치밀한 구상을 따르기 때문에 창작과정에서 세부에 이르기까지 이지적, 합리적 요소가 관철된다. 이에 따라 독자 편에서도 치밀한 논리적, 지적 재구성이 요구된다.

그라스의 알레고리적 소설이 우리에게 난해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주로 두가지 이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알레고리 해석의 열쇠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의 콘텍스트, 즉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그 하나이고, 주로 감각적 쾌감에 호소하는 글들만을 읽어온 우리 독자들의 경우 지적, ‘인식발견적(heuristisch)’ 글읽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 두번째 이유이다. 그러니 독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다소간의 사전지식을 갖추고 그라스의 작품에 한번 도전해 보시라. 그러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통쾌한 ‘지적’쾌감을 주는 독서체험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지도 모른다.

귄터 그라스가 전후 독일의 지식인으로서 보인 일관된 정치적 신념도 주목을 요한다. 그는 “관념론 없이 살아가면서도 냉소적이지 않은 하나의 태도를 얻기 위해”, “유토피아적 희망과 체념이라는 두 극단”을 동시에 극복하기 위해 ‘현대의 시지프스’, 즉 사회민주주의자가 된다. 그는 60년대부터 하인리히 뵐과 함께 시민연대를 조직하여 빌리 브란트의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80년대 초에는 반핵평화운동의 선두에 서서 싸웠다. 82년 사회민주당 정권이 실각하자 당에 활력을 넣기 위해 정식 입당한 그는 91년 사회민주당의 망명법 개정 동의에 항의하여 탈당하였다.

하지만 그후에도 그는 사회민주주의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유럽계몽주의의 아들’로 자처하는 그는 89년 독일 통일의 소용돌이 속에서 저명한 철학자 유르겐 하버마스와 함께 통일에 반대하는 입장을 대표하여 주목받았다. 그는 독일의 통일을 ‘독일의 유럽화’냐 ‘유럽의 독일화’냐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는 문제, 다시 말해 미래의 바람직한 유럽질서의 구축이라는 큰 틀 속에서 파악하면서, 동서독의 통일은 결국 거대민족국가 독일을 탄생시킬 것이고, 이는 유럽 전체가 ‘독일화’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였던 것이다. 이런 정치적 입장 때문에 그는 통일 이후 독일의 보수세력, 특히 국수주의자들로부터 혹독한 공격을 당했고, 이것이 그가 그동안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이렇게 보면 그라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편으로는 물론 그의 알레고리 문학의 미학적 성취에 대한 세계적 인정을 뜻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편협한 민족주의에 대한 유럽적 이성의 승리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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