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신화 속 태초의 인류라고 일컫는 ‘복희’와 ‘여와’의 모습을 담은 ‘복희여와도’.

  과거 중국에선 신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당시 중국인들은 신화를 소설과 함께 비이성적이고 이치에 맞지 않는 요소들이 가득한 잡문 따위로 인식했다. 반면 그리스에선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 등의 문인들이 신화를 예술로 승화시켜 민중 사회로 확산되는 것을 도왔다. 왜 중국과 그리스에선 이런 차이가 나타났을까?


  지난달 29일 ‘중국과 그리스의 신화 비교’를 주제로 외국학연구소의 두 번째 콜로키엄이 열렸다. 이날 발제를 맡은 선정규 교수(고려대)는 본론에 앞서 신화의 의미와 비교 연구의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신화를 한 민족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담고 있는 매체로 평가했다. 이어 로마의 역사가인 타시투스의 ‘자신을 알고 싶다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보라’는 말을 인용하며 동서양의 두 신화를 비교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선정규 교수는 “비교연구는 차이점을 통해 상호 융합, 소통을 할 수 있는 전제 작업이다”고 덧붙였다.


  중국과 그리스 신화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주 생성 이전을 혼돈 상태로 규정했다는 점과 자연을 인격화했다는 점, 근친 결합의 신화소를 갖고 있다는 점, 영웅의 면모에 인간을 구하기 위한 목적을 부여했다는 점 등이다.


  이어 선정규 교수는 중국과 그리스 신화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그리스 신화는 체계적인 서사 구조를 갖고 있는 반면 중국 신화는 체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는 신들 사이의 관계가 잘 짜여 있어 하나의 문학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신계는 유기적인 구조를 갖지 못한다.

  이렇게 두 신화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지리적 차이로 설명된다. 폐쇄적 지리환경의 중국은 강력한 권력에 의해 획일화를 요구받았고 왕권에 해가 될 수 있는 사상은 철저히 견제 받아왔다. 민중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신화보다는 제왕을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집권만이 허용돼 허구의 세계는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도시국가였던 그리스는 바다로 둘러싸여 외부와의 접촉이 잦았다. 개방적인 지리환경을 가진 그리스는 외부 문화를 수용하는 데 용이했다. 이는 신화에 여러 신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됐고 그리스 신화는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 중국과 그리스 신화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등 인간과 유사한 특징을 가진다. 예를 들어 ‘헤라’가 여자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에선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반면에 가장 오래된 중국의 신화집 ‘산해경’에는 인간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초세속적인 성격을 갖는 신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보다 반인반수를 한 신의 모습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다.

▲ 그리스의 신 ‘제우스’와 ‘헤라’의 모습을 담은 ‘이다산 위의 제우스와 헤라’.


  신화는 그 신화를 가진 민족의 정신을 보여주는 창이다. 그리스 신화가 보여주는 고대 그리스인의 세계관은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부친을 살해하고 모친과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피하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신탁의 내용에 따라 살게 됐다. 이는 ‘인간은 운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그리스인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와 달리 중국 신화는 중국인들의 ‘천명’ 사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천명 사상은 하늘이 백성을 통치한다는 것이다. 또 하늘의 대리인으로서 백성을 다스리는 황제는 사회적 윤리인 ‘덕’의 실행을 전제하고 있다. 선정규 교수는 “사람은 모두 자신의 운명을 갖고 있으나 천명은 황제 한 명만이 가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천명’은 고대 그리스와 중국 사회가 다른 길을 걷는 기반이 됐다. 그리스인은 각자 다른 운명을 파악하기 위해 개인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고 이는 철학으로 발전했다. 반면 고대 중국에선 천명의 기반인 덕의 실행을 위해 윤리와 도덕이 강조됐다.
마지막으로 선정규 교수는 두 신화의 발전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그리스 신화는 예술로 승화됐고 중국 신화는 역사로 승화됐다”고 말했다. 개방적 분위기의 그리스에선 신화를 소재로 한 문학, 미술 작품이 많이 만들어졌지만 중국의 신화는 비합리적인 요소가 제거되고 통치체제 틀에 다듬어진 후 역사로 남았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