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욕에서 공개된 삼성 갤럭시S4가 저를 놀라게 한 건 비단 최첨단을 달리는 기능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주목한 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디자인’이었으니까요. 신제품을 내놓을 때 디자인의 큰 줄기를 이어가는 것은 경쟁사인 애플의 ‘전략’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 삼성과 애플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경쟁사를 의식하고 견제하면서 서로가 내놓은 최첨단이 보편적인 산물이 된 지도 이젠 과거가 됐습니다. 지금의 삼성은 애플이 만들었습니다. 이는 애플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쟁자가 있었기에 모바일 시대를 빠르게 열 수 있었습니다. 중앙대의 요즘도 그렇습니다. 중대신문과 학생회, 바로 삼성과 애플의 관계이니까요. 
 
  중대신문과 학생회는 오래 전부터 서로에게 2% 부족한 존재였습니다. 2%가 어디서부터 결핍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속됐던 견제와 긴장관계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학생회가 요즘 어떤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학생들을 위한 가치와 대의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중대신문은 항상 궁금했으니까요. 학생회는 호기심이 왕성한 중대신문이 때론 귀찮았을 겁니다.  
 
  문제는 ‘오해’입니다. 그것도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을 법한 가시적인 오해는 아니었던 터라 더 안타깝습니다. 눈에 잔뜩 힘을 주고 견제하다보니 각자의 프레임에 갇혀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이 때문에 중대신문과 학생회의 관계는 점점 더 소원해지고 오해만 쌓여 갔습니다. 
 
  하지만 중앙대의 발전을 염원한다는 점에선 학생회와 뜻을 같이 한다고 믿습니다. 이로 인해 서로를 견제하는 행위가 생산적인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프레임이 오해로 번지기도 합니다. 서로에게 쌓인 오해가 대화의 단절로 변질되는 순간, 중앙대의 발전은 희미해질 것입니다.
 
  대학 내에서 학생들이 모여 조직된 집단은 모두 아마추어의 한계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배우는 학생이기 때문에 이해를 얻곤 합니다. 하지만 그 집단이 추구하는 방법론까지 아마추어일 필욘 없습니다. 아마추어의 뜨거운 마음은 잃지 않되 프로의 깔끔한 방법론을 지향해야 합니다. 여기엔 중대신문과 학생회도 포함됩니다.
 
  삼성과 애플의 견제는 서로를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두 회사의 경쟁 덕에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더 혁신적인 스마트폰을 손에 쥐게 됐습니다. 중대신문과 학생회 간 상호 견제도 상대방보다 우위에 점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두 집단이 견제를 통해 지향하는 바는 학생 만족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오해가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견제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아니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합시다. 중대신문과 학생회의 올곧은 견제는 결국 학생들을 위한 것입니다. 팽팽한 긴장을 놓는 쪽은 진짜 아마추어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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