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 그래, 몇 일 뒤엔 괜찮아져. 
 
 그렇다.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벌써 일년처럼 올해로 나의 직장생활은 벌써 십 년이 되었다. 노래가사처럼 그렇게 괜찮진 않고, 여전히 십 년간 직장을 다녔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십 년이라니. 2004년, 신입사원이던 나는 십년차 과장,이십년차 부장들을 보며 도대체 수십년동안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일을 하고 있는 끈기와 인내심의 절정인, 저들은 누구인가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이제는 조금은 어엿한 그 누군가가 되어있다.
 
 
 나에게는 로망이 있었다. 점심시간, 테헤란로나 여의도에서 볼 법한 하얀 셔츠의 직장인들이 걸고다니던 회사 출입카드. 학창시절부터 그 모습이 무척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인턴, 그러니까 비정규직으로 첫 출근한 날, 그 출입카드를 목에 거는 순간 매우 설레었다. 하지만 인턴이어서였을까. 헌 목걸이에 조금 놀랐고, 점심시간, 소수의 부장님들을 제외하고는 답답하다며 그 카드를 목에 걸지 않는 것에 선배들에 조금 많이 놀랐던 것 같다.
 
 
 첫 직장은 다부진 마음의 인턴에게도 고되었다. 부장님의 김밥 셔틀은 왜 그리 잦았는지. 오뎅 국물은 왜 안 가져왔냐, 센스하고는. 소리를 들을 때에는, 음 내가 오뎅국물까지 배달하려고 4년 동안 대학 공부한 건 아니었는데. 조금 서러웠다. 다음 달에는 진짜 정규직이야 운운하며 새벽까지 밥도 안 먹이면서 밥 먹듯 야근하던 비정규직 직장을 탈출하여 나는 드디어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이번에는 어색한 얼굴이 인상적인 새 카드 키도 받았다. 야근을 하면 밥도 줬다. 먹고 살려고 다니던 회사는 아니었으나 그제야 비로소 나는 직장인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남의 돈 벌기가 어디 쉬우리. 정규직 역시 녹록치 않았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 영자 신문을 보며 출근하고 싶던 나는, 머리를 말릴 겨를도 없이 만원버스를 잡아 타, “저 이번에 내려요”가 아닌 “혹시 이번에 안 내리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화장 좀 하고 다니지 라는 상사의 농담에는 처음 화장하고 점점 안 하는 것보다, 꾸준히 민 낯으로 다니는 저 같은 사람이 더 일관성 있어 보이지 않아요? 하하하, 라고 말했다. 그렇다, 로망과는 달리 나는 이렇게 눙치는 것마저 자연스러워진 십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십 년을 일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펜슬스커트에 킬 힐을 신고 매일 보송보송한 얼굴로 출근하는 드라마 속 커리어우먼은 대한민국에서는 의지만으로는 될 수 없다는 것을. 타고난 재능, 뛰어난 실력은 없었을지언정 그래도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 싶었고, 조금은 좋은 직장인이 되고 싶었던 마음만으로도 그럭저럭 직장생활은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심지어 이제 나는 잘 한다. 어지간한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는 치맥으로 달래는 것도, 주말에 출근하며 햇살이 비치는 출근길 동호대교를 보며 여유를 부리는 것까지. 그렇다. 나는 괜히 십년 차가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 십년차 직장인이다. 오늘도 나는 별 일없이 출근해서 일한다. 뭐, 다,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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