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신문 임기원 기자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인터뷰 가능하신가요?”

  기자는 수화기 너머 들려올 인터뷰이의 대답에 잔뜩 긴장했다. 흔쾌히 승낙한다면 좋겠지만 그건 기자의 바람일 뿐. 사실 요즘 승낙보다 거절을 더 많이 당한 것 같다.

  신문사 기자로서 숨 가쁘게 지내온 지 어느덧 1년이다. 이번학기는 여론부 기자로 살고 있다. 여론부는 이름처럼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역할을 한다. 평소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누구보다도 여론부가 잘 맞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여론부일은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여론면의 얼굴이자 꽃인 중대신문이 만난 사람코너의 인터뷰를 위해 방학동안 인물 컨텍에 열과 성을 쏟았다. 중앙인이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선배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인 만큼 소위 유명인이라 불리는 사람과 인터뷰 약속을 잡는 것은 꽤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살면서 쉽게 만나 볼 수 없는 분들이기에 연락이 닿는 것조차 어려웠다. 겨우 연락처를 얻어내더라도 청탁서를 보내라혹은 바쁘다며 거절의 뜻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학내의 일을 다루는 꼭지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학내 논란의 중심에 선 대표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꼭지를 맡게 됐다. 민감한 사안을 다루다 보니 대표자와 인터뷰 약속을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은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하는 것과, 인터뷰이를 만나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다. 특히 학생대표자를 만나다꼭지가 민감한 사안을 다루다보니 사전공부는 필수였다. 인터뷰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를 해도 막상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이면 걱정부터 앞섰다. 인터뷰를 잘 이어갈 수 있을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모든 게 다 조심스러웠다.

  화려한 인맥으로 인터뷰 약속을 성사하는 능력도, 인터뷰이를 자유자재로 이끄는 능력도 나에게는 아직 멀기만 하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했던가. 지난학기 여론부장이었던 선배를 따라 중만사 인터뷰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비친 선배는 내게 없는 능력을 고스란히 다 갖춘 것 같았다. 그땐 열심히 배워야지 했는데 막상 여론부 일을 시작하고 난 이후에 거절어려움에 부딪히면서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숨어 있던, 없는 줄만 알았던 부끄러운 열등감이 그만 내안에서 튀어나와버렸다.

  자신감이 떨어진 나에게 평가회의가 있는 매주 월요일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과연 내가 계속 있어도 되는 자리일까?’라는 나약한 물음을 하는 날도 잦아졌다.

  하지만 주워들은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80년을 사는 솔개는 인생의 절반에서 큰 선택의 길에 선다고 한다. 낡은 부리와 발톱을 뽑아내고 새롭게 태어나느냐, 아니면 힘없이 살다 늙어 죽느냐. 전자의 생살을 찢는 고통을 견딘 솔개는 더 곧고 강한 부리와 발톱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꽤나 와 닿았던 이야기다.

  신문기자로서 달려 나가야 할 남은 1, 자신감을 가져보기로 했다. 앞으론 비판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견뎌 나가는 새 부리와 발톱을 가져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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