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번 학기의 목표를 몇 개 세웠다. 학점도 있고 여가에 관한 것도 있지만, 간절하게 이루고픈 한 가지를 꼽자면 ‘기계로부터의 독립’이다. 

  지난해 대학로의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6월의 오후, 한 커플이 한적한 시간에 방문했다. 둘은 금방 본 연극 이야기를 하며 테이블에 마주 앉았고 2인용 빙수를 주문했다. 그리고 두어 마디를 더 하더니 각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 뒤로 2시간 동안, 그들은 서로의 얼굴이 아니라 손바닥만 한 액정만 들여다보다가 자리를 떴다. 들어올 때 몇 마디를 제외하고 그들이 한 말이라고는 ‘맛있네.’와 ‘이제 갈까?’가 전부였다. 그렇게 8개월간의 아르바이트 기간 동안, 나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소통을 위해 발명된 도구로 소통을 단절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우스운 것은 제 3자로서는 이렇게 잘 보이는 문제점을 나 역시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하루 24시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질 않는다. 스스로가 노모포비아라고 인정할 정도다. 카톡 확인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서 등교하고 뮤직 앱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하루를 마감한다. 교수님께 몹시 죄송한 말이지만, 강의 중에 카톡도 참 많이 했고 아이러브커피 원두 탈까봐 들락날락 거리는 일도 잦았다. 무엇보다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스마트폰 너머의 누군가와 노느라 바빴던 적도 많다. 그러다보니 어느 날 문득 목적과 도구가 전치되어서, 사람과의 관계가 엉망으로 뒤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서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손바닥만한 액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자니 문득 섬뜩해져 왔다.

  그래서 올해는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기계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어려운 목표를 세웠다. 그 첫 번째는 사람 있는 자리에서 스마트폰 하지 않기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상대가 스마트폰을 꺼내들면 대화는 순식간에 힘을 잃는다. 하지만 반짝이는 액정을 나와 대화하기 위해 뒤집어 놓는 사람을 보았을 때, 우리는 상대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된 것처럼 존중받는 느낌을 얻게 된다. 나의 작은 습관이 상대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뿌듯한 일임과 동시에 관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스마트폰 액정 밖에서 사람을 만나기이다.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덕에 자주 하는 착각이 있다. 액정 속에서 자주 보이는 탓에 실제로 얼굴본 지 꽤 오래된 사이임에도 마치 자주 만난 것 같이 생각되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본 지 2년이 넘어가는 사람도, 뉴스피드와 카톡에서 매일 만나다보니 얼마 전에 만난 것 같이 생각되어진다. 물론 이런 점이 관계를 유지하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달리 말하면 얼굴 볼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얼굴을 보고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나 친밀감의 교류가 줄어든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해에는 스마트폰 안에서만 연락하던 친구들, 은사님들을 직접 만나 안색도 살피고 안부도 물으며 사람냄새를 풍기고 싶다.

  애초에 휴대폰이라는 것이 편리한 생활과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보았을 때, 요즈음은 기계 자체가 소기의 목적을 되레 잡아먹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보다 기계가 주가 되어버리는 목적의 전치를 방지하고 눈앞에 있는 사람을 기계보다 더 존중하며,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생활로의 회귀. 과거에 쉬웠으나 요즘에 더 어려워진 당연하고 마땅한 것들을 뒷걸음질로 되찾아 가려는 3월이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이 좋은 계절을 함께하는 옆 사람의 얼굴을 더 들여다보길 바란다.
 
                                                                                              김희은(광고홍보학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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