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 들어오면서 친구들만 만나면 ‘군대 언제가냐’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조만간’이라고 일관합니다. 친구들 앞에서 무덤덤한 척, 의연한 척 말했지만 괜히 울적해지는 건 사실입니다. 괜시리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도 하지요.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요. 문제는 제 나름의 개인적인 상황을 이야기해도 그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문사 임기 만료를 비롯해 지금 당장 군대에 가지 않는 이유를 나름 조목조목하게 말해도 그들에겐 ‘핑계’로 들리기 때문이니까요. 친구들은 항상 한 곳으로 입을 모았습니다. “네가 문제야, 아직 정신을 못 차렸어.” 그렇게 전 졸지에 군대도 안가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친구가 됐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개별적인 사람의 상황을 가볍게 여기곤 합니다. 또 개인의 상황을 해결할 실마리는 항상 개인의 의식 문제로 귀결 짓습니다. 사실, 의식의 문제로 마무리하는데 익숙해져 있는 게 맞습니다. 레포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해결 방안에서 ‘개인적인 의식 제고’ 항목은 어딜 가나 단골손님이니까요. 왕따설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한 걸그룹도 특정 멤버를 ‘의지의 차이’로 환원시켰으니까 두 말하면 잔소리겠죠. 
얼마 전 한 취재원과 통화 중에 취재원이 이런 말을 전하시더군요. “그건, 그 사람 이야기고. 그 사람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핑계 같은데.” 대충 전후 맥락을 파악해보자면 지극히 개인적인 ‘그 사람’의 사정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맞는 소리입니다. 한 사람의 특정한 이야기로 전체의 ‘문제’라고 환원 지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 한 사람의 이야기, 나아가 소수의 이야기를 듣는 행위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특정 사안 혹은 제도에 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의 본질 주변을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인 생채기가 모여 지나간 자국엔 결국 그 문제의 본질이 드러나게 되는 법이니까요. 
 
  굳이 취재원과의 대화까지 끌어온 이유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선 개별적인 작은 부분에도 집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입니다(물론 그 분에게도 교훈을 전해드리고 싶어서). 그것이 설사 대의에 어긋나더라도 한 번쯤은 샅샅이 살필 수 있는 배짱은 필요하니까요.     
 
  문득 한 방송기자와의 문답이 생각났습니다. ‘기사를 쓸 때 항상 사례를 문제화시키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 같다’는 질문에 그 방송기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현실만 제대로 보여줘도 사회는 변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왜곡되지 않게 성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훌륭한 기자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중앙대 현실을 더 샅샅이 조사해 보여드리겠습니다. 대신 뻔한 답변은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결말은 더 이상 재미가 없으니까요. 물론 시대에 뒤처지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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