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2004년 미니홈피에 ‘방울이가 죽은 후 마음이 아파 강아지 키우기가 겁난다’고 적기도 했다. 삼성동 자택에서도 한때 동생 지만 씨가 선물한 진돗개 ‘봉달이’와 ‘봉숙이’를 키웠으나 봉달이·봉숙이마저 죽자 개를 기르지 않고 있다.” 2013년 2월 26일자, 중앙일보 4면 기사다. 청와대로 들어가는 박 대통령에게 마을 사람들이 강아지를 선물했고 대통령의 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소개한 글이다. 
 
  18세기 이 땅의 지성이자 사람다운 사람,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 선생은 ‘개를 키우지 마라’라고 하였다. 연암은 그 이유를 아들 종채에게 이렇게 말한다. “개는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지만, 또 개를 기른다면 부득이 죽이지 않을 수 없고, 죽인다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니 처음부터 기르지 않는 것만 못하다.”
 
  연암 선생의 성정(性情)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결절(結節)이다. ‘건너다보니 절터’라고 말눈치로 보아 ‘정을 떼기 어려우니 아예 기르지 마라’는 소리이다. 어전(語典)에 ‘애완견’이라는 명사도 오르지 않을 때 일이다. 양반이 아니면 ‘사람’이기조차 죄스럽던 때였다. 누가 저 견공(犬公)들에게 곁을 주었겠는가. 나는 “개를 키우지 마라”라는 저 말이 연암 선생 삶의 텃밭이라고 생각한다. 학문이라는 허울에 기식(寄食)한 수많은 지식상(知識商) 중, 정녕 몇 사람이 저 개와 정을 농(弄)하였겠는가? 
 
  18세기, 연암 선생이 이 땅에서 살아내던 시절에도 ‘돈’과 ‘명예’, ‘권력’을 누린 자들은 있었고 조선은 저들의 세상이었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 모두 연암 선생을 찾을지언정, 그 누구도 ‘돈’과 ‘명예’, ‘권력’을 누린 18세기의 저들을 찾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저 시절, 연암은 양심에 따라 향원(鄕愿:사이비)을 경멸하고, ‘예의’, ‘윤리’, ‘염치’, ‘정의’ 따위를 글로 쓰고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논어』 「양화편」에서 공자는 “향원은 덕의 도둑이니라(鄕愿 德之賊也)”라고 하였다. 덕이 있는 체하지만 실상은 세상에 아첨하여 모든 것을 좋다고 엄벙뗑 넘어가기에 덕을 훔치는 짓이라고 한 것이니, 사이비(似而非)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세상에 아첨하는 짓거리를 하는 자’이다. 
 
  2013년, 작금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정치인이라, 사업가라, 선생이라, 교수,…라 불리건만 이상하게도 품새는 영 딴판인 향원들이 여전하다. 제 아무리 꾀바른 말로 고명을 치고 자음과 모음의 현란한 재주부림과 동서고금을 오르내리는 현학적인 글일지라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니 한낱 세상에 아첨하는 사이비일 뿐이다. 
 
  박 대통령 기사를 읽으며 ‘개를 키우지 마라’한 연암 선생과, 향원과 사이비가 생각나 몇 자 적바림하고, 겸하여 진정한 지성이 살아 숨 쉬고 사람다운 사람이 넘치는 아름다운 대한민국 5년이 되기를 박대통령에게 기대해본다.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강사, 간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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