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 구하면 될 줄 알았다

보증금 500-월세 30을에도 추위에 그대로 노출된 자취생활

자취생들의 고난은 적당한 방 한 칸 얻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취방과 하숙집이 까맣게 몰려 있는 흑석에서의 겨울나기는 오늘의 추위만큼이나 치열하다. 보증금 500만원, 월세 30만원을 주고 마련한 방 한 칸마저도 추위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경기불황을 등에 업고 해마다 높아지는 방값을 피해 값싼 집에 둥지를 튼 ‘흑석커’들. 그들의 자취방에선 추위를 피하는 것조차 사치가 됐다.

▲ 한 학생의 자취방 모습. 갈 곳 잃은 신발장이 냉장고 위에 자리 잡고 있다.
▲ 2명의 여학생이 이불을 들고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 고시텔의 작은 방은 발 디딜 틈조차 없다.

가스비 걱정에 웬만한 추위는 참아야=
지난해 옥탑방에서 자취를 시작한 A씨는 올해로 자취 2년 차다. 인심 좋은 노부부가 세를 둔 옥탑방은 침대가 들어갈 정도로 넓어 혼자 살기엔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겨울, 옥탑방은 그 명성대로 ‘본색’을 드러냈다. 옥탑방이 외풍에 취약해 창문 틈새로 파고드는 바람에 덜덜 떨어야 했던 것이다. 겨우내 A씨는 창문에 에어캡을 덮고 테이프로 고정시킨 뒤에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도관은 동파돼 온수가 나오지 않기도 했다. 결국 A씨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 머리를 감았다. 이마저도 물을 끓일 시간이 없을 만큼 촉박할 땐 별수 없이 얼음장같이 찬물에 몸을 씻어야 했다. 방세와 관리비를 따로 내는 자취생들에겐 어느 정도의 추위는 ‘마땅히’ 감수해야 할 일이 됐다. A씨 역시 올겨울 추위를 견디다 못해 보일러 온도를 올렸다가 높은 관리비에 ‘멘붕’을 겪었다. A씨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쓰는 자취생에겐 보일러 비조차 두렵다”고 말했다.


벗어놓은 신발에 널어놓은 빨래도 훔쳐가=B씨는 지난해 자취생활에 뛰어든 이후 두 번 이사했다. 숭실대 근처 고시원에서 월세 43만원을 주고 살다가 중앙대 중문 근처로 이사한 것이 첫 이사였다. 방값이 저렴한 곳을 찾기 위해 부동산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발품을 팔았다. 그러자 보증금 50만원에 다달이 20만원을 내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 가정집에 방마다 세를 둔 구조라 화장실을 공유하는 것 빼고는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B씨는 4개월 만에 다시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 빈번한 도난 때문이었다. B씨는 “가정집 형태라 모든 자취생이 한 신발장을 사용했다”며 “신발장에 벗어놓은 신발은 물론이고 널어놓은 빨래도 먹잇감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B씨는 도난의 책임을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었다. 보안카메라가 없을뿐더러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자취집에서 범인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B씨는 “도난이 계속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결국 방을 옮겼다”며 한숨을 지었다.


외부인 침입에도 손쓸 수 없어=
도난뿐만이 아니다. 흑석의 치안은 모두가 위험하다고 귀띔한다. 중문 근처에서 3년째 자취하고 있는 C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항상 지인들에게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1월 ‘괴담’일 것만 같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깜깜한 한밤중도 아닌 오후 4시, C씨의 위층에 도둑이 든 것이다.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던 C씨는 위층에 사는 자취생이 “도둑이야!”라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 몸을 피했다. 혹여나 강도가 흉기를 가지고 있을까 두려워서였다. C씨는 “자취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도둑이 든 걸 처음 봤다”면서 “진짜 다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팔다리가 후들거렸다”고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문제는 외부인의 침입에도 취할 수 있는 조치가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C씨가 사는 건물 역시 강도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얻지 못했다. C씨는 “학교 주변에 사건이 생기면 경찰관이 상주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요즘처럼 동네가 조용할 때는 그마저도 없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인간관계마저도 자취생의 애환=주변 사람들과의 마찰도 자취생들이 공유하는 애환 중 하나다. D씨는 집주인과의 갈등으로 재작년 여름 1년 동안 살았던 자취방을 정리했다. D씨가 자신의 방에 친구를 데려오자 집주인이 외부인이 침입했다며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더욱이 집주인은 D씨에게 “외부인이 들어와 수도세가 많이 나왔다”며 초과된 수도세를 모두 지불할 것을 강요했다. D씨는 “원칙적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는 자취방에 친구를 데려온 것은 제 잘못”이라고 시인하면서도 “딱 한 번 친구를 데려왔다는 이유로 관리비를 떠넘기는 집주인의 태도가 납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은희 기자
eunhee31@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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