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 구하러 나섰다가 통학을 결심하다

학교 앞 자취방 구하기 대작전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방을 둘러봤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이쯤 되면 방을 고르는 기준은 '얼마나 맘에 드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참아줄 수 있는가'로 바뀐다.  

▲ 흑석동 주택지구의 전경

▲ 방을 구하기 위해 취재에 나선 기자가 전단을 확인한 뒤 연락을 취하고 있다.

가파른 계단들, 헷갈리는 골목, 군데군데 버려진 쓰레기봉투. 중문 부근 원룸이 밀집한 주택가에 많은 세 가지다. 문득 취재하다가 한 자취생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름에 쓰레기봉투가 제때 치워지지 않아 벌레 때문에 꽤 고생했다고 했다. 심층기획부 취재팀은 자취방을 구하기에 앞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햇빛이 잘 들 것’과 ‘화장실이 쾌적할 것’, ‘학교와 가까울 것’, 거기에 보증금 500만 원 미만에 월세 30만 원대일 것. 하지만 빽빽한 주택만큼이나 넘쳐날 것 같았던 집 중 조건에 맞는 ‘괜찮은 보금자리’를 찾긴 어려웠다.


   ‘보증금 300/월세 25’라고 적힌 전단을 보고 무작정 연락했다. 방을 보고 싶다는 말에 마중을 나온 주인아저씨는 같이 가는 길에 자신 있게 말했다. “방이 18개인데, 1개 빼고 다 나갔어.” 하지만 남아있는 1개의 방이 반지하인 사실까진 말하지 않았다. 흔히 알고 있는 반지하 방처럼 가격이 싸지도 않았다. 반지하로 향하는 계단은 건물 밖으로 노출돼 위태로워 보였다. 방을 보러 갈 때마다 항상 창문부터 열어보았지만 채광이 제대로 되는 곳은 몇 군데 없었다. 반지하 방의 창문은 제법 컸지만 역시 그곳으론 햇빛보다 찬바람이 더 많이 들어왔다.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방을 둘러봤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이쯤 되면 방을 고르는 기준은 ‘얼마나 맘에 드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참아줄 수 있는가’로 바뀐다.

  
   취재 도중 심층기획부 취재팀은 중문에 있는 괜찮은 외관의 빌라를 발견했다. 출입문엔 ‘원룸 풀옵션’과 연락처가 적힌 전단이 붙어 있었다. 5층에 딱 하나 남아있다는 방은 기대 이상이었다. 창문을 열자 산뜻한 햇살과 주변의 풍경이 넓게 들어왔다. 10평 남짓한 방엔 새것 같은 침대와 책상, 드럼 세탁기, 주방이 정갈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 해보게 될 자취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 방에서라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긴 보증금 300에 월세 55에요. 월세 안에 공과금이랑 인터넷 사용료 다 포함돼서 마음 놓고 쓸 수 있어요. 정말 괜찮죠?” 정말 괜찮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보증금을 올려서 월세를 줄일 순 없느냐고 물으니 불가능하단다. 방을 구하는 학생 입장에선 되도록 보증금을 올리고 월세를 내리고 싶지만 요즘 집주인들은 보증금은 동결하고 월세를 많이 받으려 한다. 


   그 뒤 부동산을 통해서 학교 근처의 여러 방을 돌아다녀 봤지만 수확이라곤 ‘그나마 원하는 조건의 집에서 살고 싶으면 월세로 공과금을 포함해 대략 50만원은 내야 한다’는 현실이었다. 최소한의 원칙을 만족하는 방에서 살고 싶다는, 욕심 아닌 욕심을 채우기 위한 대가는 의외로 컸다. “서울은 원래이래.” 집에 햇빛은 잘 들어오냐고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1초 만에 돌아온 대답이다. 창문을 열었더니 1미터 근접한 거리에 건물 한 채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시큰둥해진 기자를 바라보며 아주머니가 한 마디 덧붙였다. “학생들은 어차피 밤늦게 집에 오잖아.” 그 한마디는 양보할 수 없었던 원칙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여기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숨 쉴 틈도 집주인과 자취생 사이에 여유도 없는 곳. 서울을 ‘원래 이렇게’ 만든 사람들은 누굴까. 경기도 성남에서 통학하는 역사학과 A씨는 “자취를 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방값도 비싸고 자취에 필요한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며 “지금 집에서 통학하는 돈도 아르바이트비로 충당하고 있는데 자취를 시작하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그만뒀다”고 말했다.  
 

엄은지 기자 um_jee@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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