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어느 백일장 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낯선 아이들 틈에서 나는 홀로 앉아 연신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만 수백 번 되뇌고 있던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스스럼없이 다가온 그 애는 곧 옆에 있던 자기 친구를 소개시켜주었다.
친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참가부문도 숙소 방도 달랐던 우리는 2박3일 일정 내내 한 방에 모여 밤새 수다를 떨었다. 그때 그 백일장의 시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밤새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기억한다. 서로가 쓴 글을 평해주기도 했고, 간지럽지만 훗날의 꿈에 대해 비밀처럼 속삭이기도 했다.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캠프가 끝난 뒤에도 종종 연락하던 우리는 신기하게도 네 명 다 중앙대학교에 각각 다른 과로 입학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캠퍼스에서 우연찮게 마주치기도 했고 함께 시간표를 맞춰 같은 수업을 듣기도 했다. 가까워진 만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학교 앞 술집에 모여 옛날이야기를 떠들기는 했어도, 예전처럼 서로의 글이나 꿈에 대해서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비밀처럼 속삭이던 꿈들은 현실에 들켜 모두 날아가 버린 듯 했다.


  학점에, 아르바이트에 치여 지내는 동안 시간이 훌쩍 갔다. 눈 깜짝할 새에 백일장 캠프가 끝났던 것처럼 어느새 우리의 두 번째 캠프인 대학생활도 끝에 다다랐다. 또다시 헤어지는 버스에 오를 시간이 된 것이다.
  버스에 오르기 전, 나는 모든 게 막막한 우리들에게 새로운 시제 하나를 내고 싶다. 이번 백일장의 시제는 ‘꿈’이다. 시간도, 원고지 매수도, 현실도 제한이 없다. 세 번째 캠프에서 다시 만나게 될 그날, 모두가 꽉 채워진 원고지 뭉치를 품고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그날의 수상자는 우리 모두가 될 것이다.

권예지 학생 (영화전공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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