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수많은 구경거리가 있지만, 그중 가장 재밌는 건 단연코 싸움구경입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선 “싸운다!”는 소리만 들리면 전교생이 한곳으로 모이곤 했습니다. 저만이 겪었던 특이한 경험은 아닐겁니다. 저의 고등학교 은사님은 싸움구경에 열광하는 제자들을 보며 마치 ‘동물 같았다’고 말하곤 하셨습니다. 싸움 구경을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가 봅니다.
 
 머리가 굵고 나니 주먹이 오가며 치고박는 싸움보단 좀 더 점잖은 싸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정치입니다. 의석이나 공직을 놓고 벌이는 정당간의 대결은 수많은 룰과 원칙 덕분에 점잖은 어른들이 보기에도 좋은 구경거리입니다. 장소와 시간, 반칙, 선수자격까지 엄격하게 제한된 ‘신사들의 리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주먹이나 욕설이 오가기도 합니다. 
 
 정치가 다른 싸움들과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면, 선수들이 관객의 ‘신념’을 대표한다는 것입니다. 정치판의 선수들인 정치인들은 개인들이 길고 짧은 인생을 살아오며 쌓아온 나름의 철학과 주관을 대리해 싸우는 ‘대표자’입니다. 정치판을 바라보는 사람들만큼 승부 결과에 예민하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관객도 없을겁니다. 지지하는 정치인의 패배는 곧 자신의 신념이 꺾이는 것이니까요. 오죽하면 부모하고도 정치얘기는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까요. 그래도 선거철만 되면 모든 국민들이 TV앞으로 모인다는 건 정치만큼 재밌는 구경거리도 없다는 반증입니다.
 
 하지만 선거도 대학 울타리안으로 들어오면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대선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학생도 총학생회 선거에 대해선 외국인 수준의 정보만을 알고 있습니다. 공약이 무엇인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몇 개의 선본이 후보로 출마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총학생회와 단과대에서 준비한 후보자 공청회가 학생들의 저조한 참여율로 쓸쓸하게 진행되는건 더 이상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얼마 전 단과대 공청회에 취재를 다녀온 한 후배기자는 학내 언론사 기자가 일반 학생 참가자보다 많다는 슬픈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학생들의 무관심이 원인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선거 관련 보도를 준비하면서 취재를 진행하다보니 출마한 후보자들에게도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공약은 서로 베끼거나 과감한 문제제기는 외면하고 전 학생회의 공약을 그대로 가져오는 등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그 나물에 그 밥’이 되어버렸습니다. 더 이상 학내 정치에서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는 호객 요인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지하는 후보자를 물었을때 “둘 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점차 늘어가는 건 기분탓일까요.
 
 1990년대 마이크 타이슨이라는 슈퍼스타로 상징되던 미국 프로복싱의 인기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다소 시들해졌다고 합니다. 경쟁상대로 이종격투기가 부상했다는 것도 원인이겠지만, 가장 화끈한 경기를 펼치던 헤비급 선수들이 점차 수비적으로 경기를 진행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주먹만 몇 번 주고받다가 판정으로 넘어가는 복싱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후보자들이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안전하고 어중간한 태도를 취하다가 유권자 모두의 관심을 잃을까봐 두렵습니다. 투표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얼마 안되는 기간이지만 부디 후보자들이 유권자의 신념을 담을 수 있는 자신만의 그릇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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