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짐작입니다만 ‘모호하거나 미비한 규정’은 학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논란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원인인 것 같습니다. 중대신문을 자주 읽는 독자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 신문에 실린 기사 중 상당수가 “모호한 규정을 고쳐야 한다”는 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가족 정도 규모의 소규모 집단이라면 별달리 원칙을 세울 일이 없겠습니다만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엔 일정한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원칙이 없을 경우 각자의 역할이 혼재되어 어려움을 겪는다거나 구성원간 자연스럽게 형성된 상하관계가 부당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도 항상 명확하게 원칙을 세울 것을 학내 구성원들에게 요구하곤 합니다. 가장 최근의 일을 들자면 교육조교의 업무분담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원칙이 질서정연함을 만드는 건 아닙니다. 문제해결을 위해 세운 원칙이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를 낳기도 합니다. 지난해 학내 행사로 인한 소음문제를 제기하며 “소음과 관련된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이후 학내 행사 전반을 관리하는 학생지원처와 총무처는 캠퍼스 내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대한 허가 기준을 강화하고 행사 진행시 발생하는 소음을 측정하는 등 나름의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동안 없던 규정이 만들어지자 학생회나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제 주변 사람들은 “너 때문에 귀찮게 됐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잘해보자고 한 일인데 죄를 지은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원칙을 정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이해관계가 구성원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이번호에 실린 예술대 학과실습비도 ‘투명화’를 추구했으나 오히려 ‘획일화’를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이른바 ‘강사법’도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평이 대부분입니다. 결국 애써 세운 원칙을 다시 바꿔야하는 상황입니다.
 
 제 나름의 생각으론 폭넓은 의견수렴의 부족이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학과실습비나 강사법, 소음규정 모두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조금만 더 들어봤다면 충분히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사 작성 당시 만난 취재원들 역시 “별다른 이야기 없이 제도를 변경했다”는 식의 불만을 수도 없이 제기했습니다. 이번 주 중대신문이 만난 총학생회장 후보자들이 하나같이 ‘소통’을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점을 포착했기 때문이라 짐작됩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어가면서 행정실과 본부 모두 그간의 업무를 정리하고 내년을 위한 준비를 진행 중입니다. 새로운 제도가 가장 많이 갖춰지는 시기도 이때쯤입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학내 관계자들이 말했던 ‘개선하겠다’는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길 바랍니다. 여기에 더해 구성원들의 의견도 폭넓게 수렴해 모두를 만족시키면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웠으면 합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말처럼, 가장 좋은 정치는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임을 명심하면서 말입니다.
 
이현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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