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 분위기가 꽤나 어수선하죠. 잘 모르시겠다고요? 느끼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학교에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중앙대는 지금 한창 선거철입니다. 서울캠과 안성캠에서 각각 오는 27, 28일과 21, 22일에 걸쳐 양캠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장 선거가 진행되는데요.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은 자신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강의 시작 전에 강의실을 급습해 자신들의 공약을 우렁차게 말하고 나가기도 하고 해방광장에서 합동 유세를 하기도 하죠. 어쨌건 선거는 예나 지금이나 대학 내에서 가장 큰 연례행사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총학생회는 언제부터, 어떻게 생긴 걸까요.


  총학생회가 정확히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불행히도 남아있는 자료가 없어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 시절인 1949년 처음으로 ‘학도호국단’이라는 이름의 학생 조직이 등장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총학생회와 비슷한 형태의 조직이죠. 하지만 선출방식은 지금과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학생회장을 학생들이 뽑는 게 아니고 학교 당국이 단과대 학생회장 중에서 총학생회장을 지명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의 총학생회장은 정부에서 1, 2, 3지망 원하는 기업을 써내면 취업을 시켜주기도 했다네요. 이쯤 되면 학도호국단이 어떤 자리인지, 대충 감은 오시죠?


  학도호국단은 1960년 4.19혁명 당시 학생회로 다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1975년 유신체제 하에서 교육 입법이 개정되면서 학생회는 15년 만에 폐지됩니다. 학생 자치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독재정권 하의 호국체제로 또다시 바뀐 것이죠. 이러한 자치기구의 개편은 학원의 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와 자율적인 활동을 원하던 많은 학생들을 억누르기 위한 비민주적인 개편이었습니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 정치적 안정이 이뤄지면서 학원자율화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고 각 대학의 총학생회가 하나둘씩 부활하게 됩니다.


  총학생회의 재탄생에는 당시 총학생회부활준비위원회가 한몫 했습니다. 대학의 본질을 알리고 자율적인 학생 자치기구로서 총학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하며 학생들을 대변해 적극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985년 4월 중앙대에서 총학생회가 부활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양캠에서 선출된 대표자 중 서울캠 대표자가 총학생회장을, 안성캠 대표자가 부총학생회장을 맡는 방식이었습니다. 이후 1987년 양캠의 총학생회를 분리해 선출하자는 의견이 제기됐고 1987년 11월 10일 회칙개정을 통해 양캠의 총학생회 분리 운영이 확정됐습니다.


  선거 일정 논의도 화두였습니다. 이전까진 총학 투표를 3월에 진행해왔지만 당선자들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자며 11월에 선거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돼 학생들끼리 갑론을박을 벌였다고 합니다. 어찌됐건 결론은 11월에 선거를 진행하는 쪽으로 났고 1988년부터 새롭게 바뀐 총학생회 선거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총학생회 선거 방식에 대한 개편을 두고 뜨거운 논쟁을 벌였던 당시에도 투표율은 고작 50%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낮은 투표율로 고민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 같네요. 햇수를 따져보면 우리 손으로 민주적인 총학생회 선거를 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곧 당선될 55대 총학생회장은 부디 학우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힘을 얻어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게 모든 학생 여러분이 투표에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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