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하나가 자퇴를 했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일이 다 끝난 후에야 전해 들었다. 한 해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한 학기가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휴학을 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자퇴를 택한 친구의 속내가 궁금했다.
 

  뜬금없이 찾아온 부재였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다짜고짜 왜 너 혼자만 갔냐고 따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건 너 혼자뿐이 아닌데 왜 유난스럽게 혼자만 떠나냐고 따졌다. 그 정도 근성도 없냐고, 대체 대책이 있기나 한 거냐고 더 따져 묻고 싶었다.
 

  걱정과 우려 이상의 참견이었다. 말하자면 그 친구보다 내가 더 불안했다. 그 친구는 불안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일단 나는 굉장히 불안했다. 친구들이 모두 모여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면, 그 속에 있는 나는 ‘적어도 남들처럼은 살고 있구나’ 혹은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하며 위로를 받곤 했던 것이다. 그런 탓에 나는 갑작스레 찾아온 친구의 결정을 인정할 수도 응원해줄 수도 없었다. 내가 틀린 것일까봐, 잘못 하고 있는 것일까봐 우선 두려웠던 까닭이었다.


  며칠을 혼자 고민한 끝에야 나는 친구의 결정을 인정할 수 있었다. 친구를 인정하고 응원해주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함께 어울려 하는 일들도 많지만, 혼자 해야 하는 일들도 있다는 걸 아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대학에 오고 난 후부터, 나는 같은 과 동기들을, 내 주변 친구들을 나와 동일시화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같은 것을 배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내가 거기 아예 소속된 것처럼 굴어왔던 것이었다. 내 생활에 확신이 있어야 여유가 생긴다는 걸,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다음 학기가 끝나면 더 많은 친구들이 자리를 비울 지도 모르겠다. 몇몇은 군대에 가고 몇몇은 해외로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이번처럼 따져 묻지 않고, 그 결정을 차분히 들어줘야겠다. 각자가 한 결정을 서로 응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채희 (문예창작전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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