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2년간 프랑스 빠리에 있는 대학원에서 중국사를 공부한 적이 있다. 중국사를 알아야만 제대로 된 한국사 연구를 할 수 있다는 뼈저린 경험을 한 결과였다. 그런데 내 지도교수였던 도날드 홀즈만 교수는 수업시간 내내 중국 사료를 읽었기에, 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모두 각종 중국 사료를 현대 중국어로 읽고 또 이를 불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한국에서 중국의 고전 사서삼경을 배웠지만 모두 한국식으로만 읽었기에, 논어가 중국어로 룬위라고 발음하는지 조차 몰랐던 나는 조금만 한눈을 팔면 프랑스인 교수가 자료의 어디를 읽는지 조차 알 수 없었던 적이 많았다. 그 이년동안 나는 왜 한국만 벗어나면 통하지도 않는 발음으로 중국 고전교육을 받았는지 속상해 했었다.


  이런 막막한 기분을 다시 느껴본 것은 2003년 영국 더럼대학에서 한국연구재단 파견교수 자격으로 한국사를 강의할 때였다. 동아시아학과에서 주로 중국학이나 일본학 전공 학생들이 수강하였던 한국사 시간에 나는 중국인명이나 일본인명을 그 나라 발음대로 가르치느라 진땀을 흘렸다.


  한국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 비파형 동검과 곡옥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며 한국 고대인의 옥 사랑을 설명하던 중, 어느 학생이 갑자기 손을 들고 질문을 하였다. 일본고대사를 가르치는 지나 반스교수가 한국에서 출토되는 곡옥은 한국산이 아니라고 했다며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나는 이메일로 한국 내 전공자에게 SOS를 청했고, 한국과 일본의 학설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음 주 수업시간에 그 학생이 다시 손을 들어 지나 반즈 교수가 한국 고대에 사용하던 옥은 한국에는 생산된 적 없는 경옥으로서 모두 수입산이라고 다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 경옥광산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옥공방은 발견이 되었으며, 중요한 점은 한국인이 오래 전부터 옥을 좋아했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한국사 책에서 청동기시대 곡옥을 설명하면서 왜 아무도 이것이 수입품이라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조선시대 결혼 예물로 쓰이던 옥가락지 역시 요즘의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다 수입품이었단 말인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한국과 외국에서 통용되는 한국사가 많이 다르다는 점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요즘 세계화 정책에 따라 한국 대학 내에 외국인 학생들의 수가 급증하였다. 덕분에 나는 한국 대학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학생들에게 한국사를 영어로 강의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교환학생으로 4개월 정도만 한국에 머무르다 떠난다. 한국사는 이들 외국 교환학생들이 단기간 내에 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과목이라는 점에 나와 나의 학생 모두 동감하고 있다. 내가 한국사를 영어로 가르치기 시작한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한국사를 효과적으로 잘 가르칠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이현숙 역사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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