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벌개혁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삼성그룹 본사 전경.                                             사진 엄은지 기자

글 싣는 순서

 1. 경제민주화 담론의 역사적 맥락과 발전 과정
 2. 헌법적 해석 및 정책과의 상관관계
 3. 세부 각론 1) 재벌
 4. 세부 각론 2) 노동시장의 양극화
 5. 세부 각론 3) 복지의 중요성
 6. 정당과 학계 및 시민단체의 견해 차이
 7. 경제민주화의 실현가능성

 
국민경제 효율성과 공정성 지키기 위해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규제, 빼돌리기 등
재벌 대상으로 한 제재방안 모색할 때
 
 
경제민주화의 의미와 과제
경제민주화가 우리의 시대정신이 된 듯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겠다면서 외면하려는 이도 있고, 그런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며 반대하는 이도 있다. 이런 혼란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자 생각하는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밝혀야 한다.
 
나는 경제민주화를 ‘경제체제의 민주화’로 풀어쓰기도 한다. 어느 사회든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지, 어떻게 그것을 생산할지, 생산된 것을 어떻게 나눠 쓸지를 정해야 할 텐데, 한 사회가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가리켜 경제체제라 한다. 경제민주화는 이런 경제체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결정을 민주주의의 대상으로 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경제체제를 고치거나 바꾸기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결정에 이르는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경제체제에 관한 결정이 특정 소수 개인 또는 가족의 뜻에 좌우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재벌개혁의 한 가지 의의가 있다. 
 
내가 우리 사회의 경제체제에 관한 결정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래야만 민주주의의 이상과 가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이상과 가치를 구현하는 경제체제는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시장 기능을 공동체적 기반 위에”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면서 재벌개혁이 그 일부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전부는 아니다. 재벌개혁 못지않게 긴급한 과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고치는 개혁이고,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가 노동개혁이다. 경제민주화는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시장 기능을 공동체적 기반 위에” 세우는 것을 넘어서 일부 경제문제의 해결을 시장 아닌 다른 방식에 맡기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복지 확대는 경제민주화의 일환이다.
 
재벌개혁의 방향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일부로서 중요하지만 우리 경제의 효율과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의 개인이 적은 주식 지분을 갖고서도 많은 대기업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며, 그런 지배가 대물림된다. 이를 가리키는 말로는 ‘재벌체제’가 더 적절한데, 재벌체제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들 중 하나가 경제력집중이다. 많은 대기업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은 기업을 넘어 시장과 경제를 지배하고, 정치와 언론을 포함한 사회 여러 부문에서도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경우 국민경제의 효율성과 공정성이 훼손되기 쉽고, 안정성까지 위협받는다. 지배력이 대물림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효율성, 안정성, 공정성의 훼손은 개별 기업을 둘러싸고서도 일어난다. 적은 주식 지분과 절대적 지배의 결합은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의미하며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대리인 문제’를 일으킨다. 적은 주식 지분을 가진 총수일가는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길 테고, 분산된 일반주주가 이를 감시하고 통제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노동자를 비롯한 여타 이해당사자들도 기업 경영에서 배제되기는 마찬가지다. 
 
재벌체제의 이 두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야말로 재벌개혁의 핵심이며, 나아가 경제민주화의 여러 과제들 중 하나다. 그렇지만 경제력집중을 막고 소유지배괴리를 줄이기 위한 개혁은 그 성과를 단기에 기대하기 어렵다. 우선은 더 악화되는 것을 막는 데 주력하면서 상속과 세습의 과정에서 개선이 이뤄지기를 기대해야 할 텐데, 순환출자 금지와 지주회사 규제가 그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재벌총수에 집중된 경제력으로부터 나오는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막는 일은 경제민주화의 당면 과제다.
 
마찬가지로 시급한 것이 있다. 비록 재벌그룹의 소유구조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재벌총수의 전횡과 총수일가의 부당한 사익추구를 막는 데 도움이 될 제도가 여럿 있다. 집단소송, 주주대표소송, 집중투표 등이 그 예다. 이런 제도를 도입 또는 강화하기 위한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이 절실히 요구된다. 총수의 개인적, 비공식적 지배를 없애거나 그에 따르는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재벌개혁의 방안
앞에서 나는 재벌문제의 근원으로 경제력집중과 소유지배괴리를 지목하면서 이를 막거나 줄이는 방안으로 순환출자 금지와 지주회사 규제를 제안했다. 이에 대해 설명한 뒤 방안 하나를 더 제안하려 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규모기업집단 소속회사 사이의 상호출자를 금지하면서도 순환출자는 금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록 갑, 을, 병이 모두 한 기업집단의 소속회사일지라도 갑이 을의 주식을 보유하고 을이 병의 주식을 보유하고 병이 갑의 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 재벌이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때는 2000년 무렵인데, 그 본질은 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계열사의 자금을 사용하는 것이다. 
지주회사도 그 본질에서는 순환출자와 다르지 않다. 30대 재벌그룹 소속 지주회사는 21개사인데, 이들 가운데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자사주 취득과 인적 분할 그리고 주식 교환을 통해 만들어진 지주회사다. 이런 방식의 지주회사 전환은 전적으로 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공정거래법과 상법을 개정해서 막아야 할 것이다.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지주회사를 규제하는 동시에 해야 할 일이 ‘빼돌리기’(tunneling)를 막는 것이다. 빼돌리기는 회사의 재산과 수익을 경영자 또는 지배주주가 차지해버리는 것인데, 재벌의 빼돌리기로는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회사가 발행하거나 소유하는 주식을 총수일가가 헐값에 인수하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사례로는 1996년에 발행된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가 있다. 다른 하나는 총수일가가 많은 지분을 가진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 사이에서 전자에 유리한 거래를 하게 하는 것인데, 현대글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빼돌린 자금은 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세습하기 위한 자금으로 사용된다.
 
민주주의를 위하여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일부이면서 경제의 효율과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를 위한 재벌개혁은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고 소유지배괴리를 완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방안으로 필자는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전환 규제, 빼돌리기 근절을 제안했다. 물론 이 세 방안으로 충분할 수 없고, 다른 방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법률 개정 또는 제정도 중요하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는데, 집중된 경제력이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않도록 정치를 쇄신하는 것이 시급하다.
 
인하대 경제학부 김진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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