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런던은 전 세계인의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찼다. 세계인이 모두 떠난 런던의 9월, 세계인의 관심에선 벗어나 있지만 누구보다 뜨거운 장애인 선수들의 열정이 그 빈 자리를 채웠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갖지 않는 장애인 올림픽을 2008년 베이징, 2010년 밴쿠버 패럴림픽에 이어 세번째로 카메라에 담고있는 조세현 작가를 만났다. 인터뷰는 사진전이 열린 삼성 딜라이트에서 진행됐다.

 

대한민국 최고의 패션사진가를 인터뷰하기 위해 조세현(55)의 사진전을 찾았다. 그를 만나기 전부터 기자에게 가장 고민이 되었던 것은 인터뷰가 아닌 사진 촬영. 난다 긴다 하는 사진작가도 그 앞에서 카메라를 들면 쩔쩔맨다는데 그를 만나기도 전부터 사진촬영 걱정이 앞섰다. 드디어 그를 만난 순간, 떨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를 준비한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 앞에서 카메라도 긴장했는지,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는다. 연거푸 카메라를 조작해보지만 여간 말을 들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기자는 체면을 구겨가며 사진작가인 그에게 도움을 청해본다. “카메라 렌즈를 빌릴 수 있을까요?” 카메라는 2대였지만 최고급 사양의 카메라로 그를 담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자 그는 “카메라가 좋다고 사진이 좋은 게 아니다”며 기자에게 “그럼 뭐가 중요할까요?”라고 되묻는다. “실력이 좋아야겠죠.”라고 답하는 기자에게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마음이 중요해요. 학생 때 카메라가 고장 나서 사진 못 찍겠다고 할 때마다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에요.”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부터 큰 깨달음을 얻고 시작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작가가 아닐까 싶은데, 처음 사진을 만났을 때를 기억하나.
“길거리에서 우연히 필름을 주웠던 게 사진과의 첫 인연이었어요. 그 때가 중학생때였어요. 필름을 보면 네거티브로 되어있잖아요. 색이 반전이 돼 있으니 형체를 알 수 없는데, 그걸 인화하면 사진이라는 게 나온다는 거에요. 너무 신기했던 거죠. 그때부터 푹 빠졌죠.”


-그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가.
“고등학교 때 사진부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카메라가 거의 집 한 채 값이었으니까 쉽게 접할 수 없었죠.”


-사진학과로 진학하는데 집안의 반대가 굉장히 심했다고 들었다.
“부모님은 당연히 법대에 갈 줄 아셨을 거에요. 그런데 갑자기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한달 동안 앓아누우셨을 정도였죠.”


-그런데도 결국 사진학과에 갔다.
“제가 예비고사 성적으로만 보면, 중앙대 사진학과에 올 성적이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사진이 너무 찍고 싶었던 거에요. 그래서 고민만 할 게 아니라 ‘중앙대에 한번 찾아가 라도 보자’ 해서 중앙대에 찾아갔는데, 그때 처음 뵌 교수님이 지금은 돌아가신 임응식 교수님이에요. 콧수염에 선글라스를 끼고 계신 게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죠.(웃음) 교수님께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단 책임은 네가 져야할 몫이다’라고 한마디 하시는 거에요. 그 말을 듣고 확신이 섰어요. 책임 질 자신이 있었거든요. 당시 그런 책임감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많이 해요.”

 

그는 ‘연예인들이 가장 찍히고 싶어하는 사진가’라는 수식어처럼 패션사진가로가장 유명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그의 렌즈엔 유명 연예인이 아니라 고아, 장애인, 다문화 가족 등 사회 소수자들의 얼굴이 더 많이 담기고 있다. 그가 화려한 연예인들이 아닌, 사회의 소수자에게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신부님이셨던 외삼촌의 전화 한통이었다.


-패션사진가로 이름을 알린 후, 스타들을 촬영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했을 것 같은데.
“어느 날 외삼촌이 ‘너 맨날 그런 것만 찍지 마. 노숙자 부랑자들도 좀 찍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외삼촌이 계신 들꽃마을이라는 장애인 시설에 가서 사진을 찍어주게 됐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제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이 된 것 같아요.”


-스타들과 입양아들이 함께 사진을 찍어 입양문화를 알리는 ‘사랑의 사진전’도 올해로 10년 째다.
“입양이라는 민감한 주제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럼에도 10년 동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아기들에게 따듯한 가정을 찾아주자는 신념이었어요. 지금도 저는 외로운 아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에요. 10년 동안 도와준 여러 손길에 감사하고 있어요.”


-얼마 전엔 입양을 보냈던 아기를 만났다고 들었다.
“미국에 입양을 보낸 아기를 만나러 다녀왔어요. 다시 보면 하나하나 촬영한 그날이 떠오르며 가슴이 벅차요. 그 날은 마치 제 아들을 만난 것처럼 하루 종일 붙어있다 헤어졌어요. 그 아기도 제법 커서, 저를 얼마나 따르던지요. 제가 찍어준 사진을 신줏단지 모시듯 귀하게 간직하고 있는 걸 보면서 뿌듯하고 기뻤어요.”

 

 

 그가 요즘 가장 주력하고 있는 일은 런던장애인올림픽에서 찍은 사진들을 디지털로 전시하고 있는 사진전을 홍보하는 일이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날도 사진전을 찾은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을 맞이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008년 베이징 때에 이어 3번째 패럴림픽에 참여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2006년에 대한 장애인 체육회에서 요청이 왔었어요. 국가대표 선수들을 멋지게 촬영하고 싶다고요. 국민에게는 장애인 체육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고, 국가대표 장애인 선수들에게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스크린을 통해 사진을 전시한 것이 눈에 띈다. 디지털로 전시한 이유가 있나.
“장애인 선수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세상에 선보이고 싶은데 장소 섭외가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사람들은 장애인이 주제라면 큰 관심을 두지 않거든요. 그러던 중 삼성 측의 도움을 받아서 좋은 장비와 넓은 장소를 제공 받을 수 있었어요. 새로운 시도는 늘 저에게 힘을 주죠. 새게 해본 디지털 사진전이 아주 만족스러워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촬영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뭔가.
“사진을 찍는 모든 대상이 마찬가지겠지만 첫 번째가 커뮤니케이션이고, 두 번째는 배려에요. 대화를 통해 서로 신뢰와 존경을 쌓고 그들이 나를 인정해야 좋은 사진이 나오거든요. 촬영 장소, 말투 하나, 커피 한잔, 자리 배치 등 모든 곳에 신경을 쏟아요.”


-본인은 ‘사람 사진가’라고 부르고 있다. 30년 넘게, 사람을 찍으면서 내린 사람의 정의가 있을 것 같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죠. 아름다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사진을 찍는 일도 사람들의 아름다운 영혼을 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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