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 앞에 길게 늘어선 줄, 학생들은 저마다 책을 찾느라 분주하다. 위치가 표시된 종이를 뽑은 후엔 책꽂이 앞에서 분류표를 유심히 훑어 나간다. 드디어 익숙한 제목 발견. 책을 뽑아 드는 순간 반대편 같은 위치에서 책을 빼들던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앞에 선 사람은 ‘운명의 상대’가 아닌 책을 찾아 가져다 주는 ‘운반의 상대’. 안성캠 도서관 참고자료실에서 근로장학생 김성희씨(공예학과 2)가 매일매일 겪는 일명 ‘도서관 로맨스’다.

 

▲ 김성희씨가 분류표에 맞춰 책을 정리하고 있다.


  안성캠 도서관의 첫 인상을 몇 가지 단어로 정리하자면 무덤, 던전, 낡은 배 정도다. 많은 신입생들이 도서관을 보자마다 “어? 피라미드 같이 생겼네”라고 말하곤 한다. 겉모습도 겉모습이지만 천장이 유난히 높고 커 소리가 잘 울리는 구조도 별명에 한 몫 했다. 그러나 어느 대학 도서관이나 ‘꿈꾸는 로맨스’가 빗겨갈 수는 없는 법. 기대를 잔뜩 품고 도서관을 찾은 기자에게 김성희씨가 한 마디 한다. “제가 로맨스에는 약해서….” 그러나 그녀는 창문조차 없는 꽉 막힌 자료실에서 남자 대신 수많은 종류의 잡지들과 깊은 사랑에 빠져 있었다.


  잡지들과 사랑에 빠지기 전 그녀는 도서관의 문턱조차 밟지 않던 학생이었다. 도서관은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닌 단지 ‘복사실’이었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근로장학생을 하면서부터 도서관은 그 어디보다 로맨틱한 공간이 됐다. 그녀가 일하는 참고자료실에는 잡지들이 가득했고, 함께하는 시간만큼 그녀가 탐독한 잡지들도 쌓여갔다. 참고자료실 열람 1위인 시사인, 한겨레21 같은 시사 잡지는 물론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미술시대, 리빙시대 같은 예술 잡지도 읽었다.


  잡지가 그녀의 연인이라면 심리나 소설 서적은 그녀를 치명적으로 유혹하는 외도 대상이다. 평균 2주에 10권정도 읽는 그녀는 잡지와 비등비등할 정도의 독서량을 자랑한다. 이번학기엔 다독상까지 수상했다. 많은 독서의 비결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글이 아니라 그림을 보거든요.” 책을 생각하면 내용보다 그림이나 로고가 먼저 떠오를 정도다.


  근로장학생인 이상 독서만 할 수는 없는 법. 학기 중에 책 대출이며 반납 관리에 바쁘던 그녀는 방학 때면 도서관 지하의 ‘진짜 던전’에 간다. 지난 잡지를 제본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지하 1층, 자물쇠가 잠겨 있는 던전까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면 깜깜한 복도가 나타난다. 그리고 자동으로 불이 켜진다. 탕- 탕- 탕 소리가 나며 켜지는 불은 로맨스와는 한참 멀어 보이지만, 김성희씨는 오래된 책 사이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책들에 둘러싸인 그녀의 로맨스. 진짜 로맨스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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