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교수

  이틀 간의 심포지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강연에서 중앙대 김누리 교수(유럽문화학부)는 ‘지금의 한국사회는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를 물었다. 그는 “한국사회는 절망적이다. 더 이상 아무런 생명도 잉태하지 못하는 사막이 아닌가, 강자만 살아남는 정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자답했다.

  김누리 교수는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유럽적 가치를 이해하는 것 보다는 한국사회에 초점을 맞출 것을 강조했다. 우리의 현실이 절망적이지 않다면 유럽을 굳이 돌아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살율은 높지만 출산율은 낮고,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공부하지만 행복감은 극도로 낮다. 한국사회의 현주소다. 아이러니하게도 객관적 지표만 보면 대단한 나라임은 틀림없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 단기간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타이틀을 확보했다.

  1986년을 기점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도 했다. 경제·정치적 기적을 이룬 나라에서 사회구성원들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다는 현실이 가혹하기만 하다.

  김누리 교수는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 데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한국사회가 총체적으로 미국화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법, 제도뿐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 자체도 미국화된 구조적인 문제가 원인이다”고 말했다.

  즉 제도뿐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도 미국화가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제도의 미국화와 영혼의 미국화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총체적 미국화’의 단계에 진입해 있다.”

  총체적 미국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사회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면 쉽게 이해된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미국식 모델을 따른 결과였다. 시장자유주의와 국가방임주의가 결합한 자유시장경제에 한국사회 특유의 재벌구조가 첨가되어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됐다.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것은 정치가 떠안은 과제이지만 한국정치 역시 미국의 모델을 따랐다.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힘든 미국식 보수양당제가 그대로 한국사회에 주입된 것이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김누리 교수는 ‘유럽적 가치’를 강조한다. 유럽적 가치를 다루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유럽이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이념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럽은 이방인의 도전에 대한 응전이다. 

  즉 유럽의 정체성은 항상 타자와의 대립 속에서 형성됐다. 현재의 유럽적 가치 역시 미국적 가치, 헤게모니적 타자에 대한 대응으로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적 가치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김누리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 사회성, 보편성, 이성주의, 인본주의, 생태주의, 이상주의, 연대주의를 ‘7대 유럽적 가치’라고 잠정적으로 정의한다.

  김누리 교수는 “한국사회가 절망의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유럽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며 “7대 유럽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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