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내리쬐는 4학년 전공 수업 강의실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 자다 깨서 본 강의실은 늘 봐온 그 모습 그대로였다. 길다면 긴 4년이란 시간 동안 함께한 중앙대학교는 나에게 익숙하다 못해 지루한 공간이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4년 전 오늘을 떠올렸다. 그 당시, 나에게 유일한 바람은 대학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대학생이 된 지금,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리고 그 시각 수험생들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한창이었다.


논술시험을 치러 중앙대를 찾은 수험생들을 촬영하기 위해 논술 고사장에 방문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학생들을 만났다. 시험시간에 늦을까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타고 수험장에 도착한 학생도 보였다. 수험표를 손에든 저들 속에서 수험표를 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과거 내 모습이 떠올랐다.


4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여전히 입시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다. ‘수능’ 소리만 들어도 가슴 한구석이 싸해지고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와 상관없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다 문득 내가 너무 일찍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이른 이별 준비 때문에 현재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붕떠버린 셈이다.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져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헤어짐을 결심한 연인과의 데이트만큼이나 따분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따분함이라는 이름 아래 중대신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기자는 중대신문사 재수생이다. 입학 초기 중대신문 불합격 통지를 받고 자존심에 타격을 받은 후 중대신문은 보지 않겠다 다짐해 놓고서는 정확히 1년 후 입사신청서를 다시 작성했다. 누구보다 중대신문에 애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학생처럼 막연한 두려움과 설렘으로 가득했던 중대신문 면접과 논술고사가 있던 날의 설렘은 사라진 지 오래다.


수능과 더불어 나를 돌아보게 한 일이 있다. 이번 주부터 시작된 중대신문사 2차 수습기자 모집이다. 수습기자 지원 포스터를 학교 곳곳에 붙였다. 임기만료만 기다리는 내가 수습기자 모집 포스터를 붙이고 다닌 것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너무 이른 이별을 준비한 이유는 새로운 길을 찾는 데만 급급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졸업 후의 진로만 생각하다 보니 그동안 지나쳐온 길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길을 찾는 데만 급급했다. 그러다 문득 멈춰서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다 여긴 나의 대학생활을 곱씹어 보다 중대신문이 보였다.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학생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는 아직 매너리즘을 해결할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때로는 길을 잃는다는 것은 늘 가던 길에서 벗어나 또 다른 지름길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새로운 만남과 이별의 경계에 서 있는 모두들, 잠시 길을 잃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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