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지난 2일 발표된 장회익 교수의 논문 '새로운 생명가치관의 모색:
환경윤리는 어디에 바탕을 둘 것인가?' 일부를 발췌해서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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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명가치에 대한 고찰이 인간 아닌 다른 생물이 지닌 생명에까지 확
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그 어떤 합의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른바 환경문제에서 보듯이
이런 문제들이 이론상의 관심사가 아닌 심각한 현실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현재 거론되고 있는 주장들을 크게 구분해 본다면 대
략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으로 대별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종래의 계몽사
상의 연장선에 서 있는 인간중심적 관점이며, 다른 하나는 새롭게 대두되는
생태사상을 그 바탕에 둔 비인간중심적 관점이다.
전자는 인간의 생존여건 향상을 위한 최근의 노력들이 오히려 환경을 심각
하게 훼손시키고 있음이 사실이나, 이는 우리의 무분별한 개발정책과 방만한
생활태도가 초래한 부작용에 해당하는 것일 뿐 인간을 중심에 둔 가치의 문
제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인간중심적 관점에 비해 좀더 깊은 생태사상을 바탕을 둔 후자의
비인간중심적 관점에서는 바로 이러한 인간중심적인 개발 그 자체가 환경문
제의 주범이므로 이러한 인간중심적 사고를 폐기하고 생태계의 내재적 가치
를 부여하는 새로운 사고의 틀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바로 이 시점에서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생명가치에 대한
그 어떤 규정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현대과학은 지구상의 생명은 긴밀한 시공적 연계를 통해 구성되는 하나의
정합적 체계를 이루고 있으며, 모든 개별 생명체들은 이 하나의 정합적 체계
이루는 부분들에 해당된다는 것을 즉 온생명을 밝혀내었다..
생명이 지닌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특히 생명의 성격을 논의함에 있어서
온생명과 개체생명 사이의 관계는 대단한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이와 관련해 특히 흥미로운 점은 온생명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인간의 위
치이다. 인간은 최초로 자신이 속한 생명의 전모 즉 온생명을 파악하는 존재
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출현을 온생명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면 이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내부로부터 자신을 파악하는 존재가
발생했다는 것은 곧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의식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생명과 인간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제 생명가치란 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좀더 자세히 살펴 보기로 하자. 앞서 살펴 본 바와 같
이 생명을 단순히 개체생명의 입장에서만 고려할 경우 개체생명들이 지닌 가
치의 경중을 논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생명의 성격을 단지 개체생명 속에 담긴 내용으로만 보지 않고 온
생명이라는 큰 틀을 통해 파악할 경우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물론 개체생명들이 지닌 가치를 그들 자체만으로 절대적인 어떤 것으로 또
한 온생명이란 그 어떤 절대자를 위한 종속적 개념으로도 보지 않으면서 개
체생명들이 지닌 상대적 가치를 논의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고도 조심스런 일
이다.
그러나 우리가 온생명 중심의 가치관을 의미있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온생명의 이상적 존재양상에 대한 그 어떤 구체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 하나의 예로서 지난번 리오 환경회의 이래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제창
되는 이른바 `생태적으로 건전한 지속가능한 개발'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온생명의 관점에서 이것이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 표현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여기에는 설
혹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성격을 지닌다"는 조건을 전제로 달아
놓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조건 아래 허용되는 최선의 개발을 취하겠다고 하
는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사고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중심적 사고와 온생명중심적 사고에 커다란 차이가 발생할 또 한가지
사례는 살상에 관한 문제이다. 온생명의 관점에 입각해 본다면 온생명의 주
요 기관에 해당하는 생물의 `종'과 이 안에 속하는 단일 개체 즉 단일 `유기
체'는 그 중요성에 있어서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종의 존속에
무관한 범위에서 단일 유기체를 살상하는 것과 하나의 종을 말살시킬 위험을
지닌 살상행위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의 전통사상 속에는 모종의 직관에 의해 이것의 핵심적
내용을 파악하고 이를 전수해 온 사례들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이러한 전통사상들을 온생명적 관점을 통해 재조명함으로써 전통사상의 주요
내용을 재인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생명가치관을 기존의 문화적 전
통과 발전적으로 융합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